법치와 정치 그리고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by 윤해



2023.12.11

죄형법정주의, 법치국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오로지 법률에 의한 구제만 허용된다. 자력구제나 사적구제는 국가가 집행하는 법치의 후퇴를 가져오므로 국가는 이를 매우 싫어한다.

우리가 정글에서 빠져나와 사바나를 지나 강가에 정착하여 무리가 우리가 되고 우리가 공동체가 되면서 가장 달라지는 것이 무엇일까? 다시 질문하면 정글에서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먹이를 구하고 사는 야생으로 살 때와 강가에 정착하여 무리를 이루어 협업하며 살 때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사적구제, 쉽게 말해 개인 간의 보복은 원수가 원수를 낳고 그 원수가 또 원수를 만드는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무리가 빠져든다. 이런 사적 보복은 궁극적으로 무리를 해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무리라는 공동체의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 내가 너의 원수를 갚아줄게 너는 네 할 일을 하거라"이다. 이것의 세련된 버전이 죄형 법정주의이고 법치주의라는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 시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지은 죄에 상응하여 그대로 되갚아 주는 함무라비 법전의 법정신으로 시작된 죄형법정주의가 중세 종교재판의 마녀사냥과 같은 기득권 수호의 광기로 변질되다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계몽주의의 물결을 타고 경찰국가가 탄생되어 장발장의 빵으로 상징되는 왕당파의 학정을 종식시킨 프랑스 대혁명이 불러온 나폴레옹 시대의 결과물, 나폴레옹 법전이 근대 대륙법의 기초로서 지금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법치주의의 원형이라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법조 3륜이라 하면 판사, 검사, 변호사라고 한다. 판사는 재판을 미뤄 조지고 검사는 피의자를 불러 조지고 변호사는 의뢰인의 돈을 받아 조진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법조 3륜이 이끄는 법조 공화국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연일 계속되는 비리 정치인의 혐의 공방으로 날이 새고 있다.

정치와 법치는 결이 많이 다르다. 법치는 지켜야 할 최소한이다. 적어도 이 정도는 지켜야 공동체 해체는 막을 수 있다는 선사시대를 거치고 역사시대 내내 지켜온 합의다.
정치는 말 그대로 바른 아버지가 식솔을 다스리듯 해야 한다. 어느 가정에 가장인 아버지가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존경받지는 않는다. 그것은 법이 최소한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한 가정을 다스리는 데도 솔선수범하여 정의와 도덕을 추구해야 그 가정의 식구들이 바르게 자라며 혼란이 없어진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가장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법은 물론이고 나아가 바른 아버지로서 처신을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것이 정치가 법치 위에 놓여야 할 유일한 이유다.

소크라테스가 수많은 제자들의 탈옥 권유를 뿌리치고 "악법도 법이다"라고 일갈하며 독배를 마셨을 때 소크라테스가 지키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나 상상이 가는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평생 동안 무지의 지를 설파한 세기의 철학자는 악법이 내려준 독배를 마시면서 그가 정글에서 사바나를 거쳐 강가에 정착하여 무리가 우리가 되고 우리가 공동체를 만들어 법치를 세운 이유를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공동체가 해체되어 무리가 싸우면서 뿔뿔이 흩어져 사바나를 거쳐 다시 밀림으로 들어가는 사태만은 막아야겠다는 심정으로 독배를 마셨다면 나훈아가 부른 테스형이야말로 이 시대 대한민국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고 했던가! 민주화 운동을 통해 악법을 타파하고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목의 수많은 일탈행위를 민주화로 가는 훈장처럼 가슴에 아로새긴 운동권 정부에서 이상을 노래하고 정의를 부르짖었지만 막상 무대에 선 운동권들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결국 민주화란 허울을 쓰고 세상을 기망하고 자신을 속이며 법치를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 국민들을 픽박하는 수많은 악법들을 도깨비방망이 두들기듯 양산하여 법안을 탈법안 시킨 무리들이 저지른 결과는 정녕 태산명동 후 온갖 범죄혐의로 뒤덮인 초라한 서일필뿐 이런가?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 아픔을 그 웃음에 묻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느냐고 법치를 위해 죽어간 테스형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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