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3
자연을 닮은 사람이 세상에 들어와 인간으로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인생이라는 길 위를 걸어갈 수밖에 없다.
누구는 꽃길을 걷고 누구는 흙길을 걷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인생총량불변의 법칙에 따라 사람의 형상을 하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운명과 숙명의 희비쌍곡선은 정확하게 동일한 면적의 적분커브를 그리며 우리가 사는 인생여정을 안내하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비록 인간으로서 세상 속에서 서로 부대끼고 살고 있지만 행운을 만나서는 기뻐하고 불운에 빠지면 의기소침하면서 운명을 원망하고 사소한 사건에도 일희일비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고통스러운 시간은 1초도 여삼추로 느껴지고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고 있는 것같이 느리게 흘러가고 달콤하고 행복한 시간은 백 년도 꿈결같이 흘러간다. 이처럼 세상 속에서 인간과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 내는 희로애락 오욕칠정이 그대로 인생에 담겨있고 버무려 있으면서 익기도 하고 발효되기도 하는 것이 세상이라는 길 위를 걸어가는 우리의 운명이요 숙명이다.
유구한 생명줄의 연장인 도를 타고 세상에 태어난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의 길을 뚜벅뚜벅 가다 보면 산절수절을 만난다. 산길은 비록 험준하다 하더라도 두 손 두 발 다 합쳐서 어떻게 넘어갈 수 있다고 쳐도 인생길 앞에 물을 만나면 얕은 개울물이나 헤엄쳐 건너갈 정도의 하천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물가에 배를 대고 노를 저어 건너가게 해주어야 하는데 , 이때 뱃사공에게는 덕분(德分)의 은혜를 입었고 물가에 댄 배에게는 덕택(德澤)의 은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으로서 한 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물가에 댄 배, 배를 젓는 뱃사공의 덕택과 덕분으로 수절을 넘어 힘을 내어 인생의 길을 완주하는 것이다.
세상의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인생길을 함께 가는 도반이요 억겁의 생명줄의 인연이 돌고 돌아 만나는 인연이다. 내가 다른 도반의 덕택과 덕분으로 수절을 넘기도 하지만 나도 누군가라는 도반을 수절에서 건너주는 배를 탄 뱃사공이 되기도 한다. 짧은 세상의 인생길에서도 서로 주고받는 품앗이가 덕분(德分)과 덕택(德澤)이고 긴 생명줄의 도에서 도와 덕이 DNA 이중나선구조와 같이 꼬이고 풀리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우리가 자연을 사는 사람으로서 생명줄의 품앗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겠는가?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우리가 스마트폰을 매개로 서로가 연결되고 세상과 연결되고 문명의 축적된 지식과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들 각자의 삶이 골방에 틀어박혀 분절화된 삶을 살게 된다면 우리가 인생이라는 길 위를 걷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도와 덕의 품앗이를 해야만 하고 덕분과 덕택 속에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망각하기가 쉽다.
우리가 마주하는 스마트폰은 어쩌면 자본화된 세상의 품팔이 도구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품을 팔고 품을 사다 보면 우리는 스마트폰이 주도하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인양 빠져들어 중독자가 되어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까마득하게 잊고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덕분과 덕택이라는 품앗이는 못하고 자본화된 세상에서 품팔이만 지겹게 하다가 도덕을 잃어버리며 사는 인생이 될까 한번쯤 길 위에 서서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