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4
문명은 말과 글을 가지고 추상적 개념을 만들어 우리가 지나왔던 자연을 왜곡하고 말과 글이 만든 일련의 가상세계를 만드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문명화되면 될수록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이탈되고 문명의 진보라는 말은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하나하나 불사르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에 올라탄 모습과 흡사하다.
자연 대신 인공을 택한 인류는 사람으로 자연에서 뛰어놀며 살던 시절을 뒤로하고 인공적으로 만들고 건설한 세상이라는 한계 속에 갇혀서 인간이라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만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지독한 착각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착각에 기반한 삶을 세상에 갈아 넣은 결과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대문명이다.
농업혁명을 통해 잉여농산물을 확보하고 몇몇 동물을 가축화하는 데 성공한 우리 인류가 문명을 만들었지만 자연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 신을 창조했고 신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 원시화폐경제가 자리를 잡을 무렵 등장한 종교와 이념과 사상은 우리 인류를 자연으로부터 멀리멀리 떨어져 나가게 하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은 반드시 지키고 보전해야 할 우리의 소중한 터전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는 인간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고 새면 매일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문명이 건설한 세상이라는 공간의 관계망 안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노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바빠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섭리 따위는 까마득하게 잊고 살고 있는 모습이 세상을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지독한 착각은 어쩌면 문명화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가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품성이며 이러한 꿈 속에 놓인 우리가 세상이 꾸며놓은 꿈과 같은 현실 속에서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되고 힘써 노력하면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현실이라는 꿈을 깨고 보면 우리가 세상 속에서 하고 있는 노력이나 행위가 우주적 자유인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깨닫는다. 깨달음의 요체가 자신의 한없는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다. 우주적 존재로서 자유인이 되고자 한다면 세상 속의 관계적 존재로서 인간의 욕망과 번민과 망상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지독한 착각이 얼마나 큰지 그저 아득할 뿐이다.
장자는 소요유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노닐고 또 노닐고 놀아라 세상을 사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웬 팔자 편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장자는 첫 편부터 유유자적하게 놀라고 외치는 것이다. 놀라고 하는 말이 놀랍지 아니한가?
다람쥐 체바퀴 같은 조직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마치 달 착륙에 성공한 우주인 같이 여유롭게 달위를 걸어가는, 중력의 구속도 풀리고 사뿐사뿐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인의 모습에서 장자의 소요유가 연상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농업혁명 이래 만년을 지나온 인간의 문명은 이제 노동으로부터 자유하는 신인류를 향해 나아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농경과 산업화 사회를 지나온 우리들에게 노동은 신성한 것이요 노는 것은 죄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너무나 뚜렷하여 노동으로부터 자유하려는 시대정신과 부딪히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세상은 노동의 종말을 넘어 사고의 종말 나아가 판단의 종말까지도 예견되고 있다. 마치 장자의 소요유를 즐기는 우리에게 AI가 우리 인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지독한 착각에서 깨어나라 이제 인간이 없어도 세상은 돌아간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