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해 Dec 15. 2023

깔대기와 분무기, 모임과 흩어짐의 무한반복



2023.12.15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라는 화두는 우주적 존재로서 한 생명이 품고 있는 근원적 질문인 동시에 한시도 쉬지 않고 작동하며 나아가는 만물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명제를 우주적 명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호흡하고 사는 사람의 감각은 직관적이다. 그냥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이라는 육근이 청정하게 작동하면 색성향비촉법(色聲香味觸法)이라는 육경이 활성화되어  특히 시각과 미각이 극대화되고 귀와 눈사이가 서로 연결되면 자연에서 일어나는 섭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상태에 놓인다는 의미다.

자연에서 빠져나와 문명을 가지고 세상을 만든 우리가 처음에는 우주적 질서에 순응하여 수용체로서 세상을 자리매김하여 만법귀일라는 만물의 섭리를 깔때기 마냥 빨아들여 세상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인공적인 문명을 건설했다고 한다면 중세의 신을 대체하여 등장한 근세의 과학은 신으로 상징되는 우주의 섭리를 뉴턴 이후 관찰하기 시작했고 과학이라는 이름 그대로 자르고 잘라 물질의 최소단위까지 파고들어 마침내 양자역학이라는 미시계의 문을 열면서 일귀하처라는 분무기에 한 발자국 다가선 것이다.

이처럼 모임과 흩어짐이라는  이합집산의 원리가 지배하는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류가 깔때기와 분무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가지고 우주의 섭리를 이해하고자 분투노력한 결과가 현대 과학문명의 근간인 양자역학이다.

양자역학을 통해 찾은 원자의 세계는 무엇하나 정해진 것이 없는 입자와 파동의 세계다. 즉 무엇을 고정할 수 있는 절대적 세계가 아니라 무엇 하나도 고정할 수 없는 상대적 세계라는 것이다. 마치 만법귀일 일귀하처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깔때기와 분무기가 파동으로 춤추면서 경계가 정해지지 않고 떨리는 세계 우리가 그곳에 무엇이 있다고 정하려면 수학적 확률에 의해 합의해야 하며 또 정하는 그 순간 위치가 달라지는 원자 속 소립자의 세계 속으로 우리 인류는 만법귀일하여 일귀하천한 것이다.

자연에서 빠져나와 문명을 만들고 마침내 다시 자연의 섭리를 깨달으면서 우주적 섭리를 한 바퀴 돌린 우리 인류가 가야 할 일귀하처는 어딜지 매우 궁금하다. 자연을 자세히 보고 관찰한 수많은 문명의 이기, 깔때기와 분무기 같은 현미경과 망원경을 통해 육근과 육경의 경지를 과학적으로 확인한 우리 인류가 여전히 자연에서 빠져나온 초기 인류문명과 같은 시행착오로 점철된 관성을 지속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인류의 일귀하처가 어디로 튈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지독한 착각, 내가 없으면 안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