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8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나라는 말을 가끔 한다. 알 수 없는 일을 당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신출귀몰 (神出鬼沒)한 사람을 만나 어안이 벙벙할 때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말이다.
신출귀몰이 인간으로서 재주가 비상함을 일깨울 때 사용되기도 하지만 맑은 정신이 나타나면 혼탁한 귀신은 사라진다는 글자 그대로 의미로 해석해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들여다볼 여지가 많다.
사이비란 사시이비, 즉 비슷하나 다름을 의미하는 말이다. 비슷하다는 말은 모방을 했다는 말이고 다르다는 말은 원본이나 본질과 다르다는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본질인가라고 하는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만 명쾌하게 답할 수 있다면 무엇이 정통이고 무엇이 사이비인지 단박에 알아볼 수 있으련만 인간세상의 모든 착각과 아이러니는 이 정통과 사이비의 끝없는 논쟁 속에서 파생된 부산물이다.
겨우 말을 하고 말귀를 알아들을 무렵 애들을 놀린다고 짓궂은 이모, 고모 또는 나이 든 형제들이 천진난만한 애들에게 "너 어디서 왔니"라고 물어보면 알 턱이 없는 애들은 눈만 껌뻑껌뻑 하면서 놀리는 사람을 바라보면 , 확신에 찬 말로써 " 다리밑에서 주워왔다"라고 진지하게 놀리면 자기가 누가 내다 버린 고아인 줄 알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면 거기에 재미난 어른들이 숫제 멀쩡하게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을 다리에서 주어온 고아로 몰아가고 애들도 철들기 전까지는 자기가 출생의 비밀이 있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이처럼 출생의 비밀은 다리밑에서 주워온 건지 부모에게서 태어난 건지 유년기의 상상과 억측을 지나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나면서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청년기가 되어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세상을 사느라 정신줄을 놓고 살다가 마흔 초반에 세상살이가 조금은 안정될 무렵 불현듯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묵직한 화두가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찾아온 7번째 별이 지구라는 말을 믿어보면 우리 모두는 어린 왕자와 같이 별을 여행하는 별아이 인지도 모를 일이다. 별을 여행하는 별아이 어린 왕자가 지구에 와서 나누는 여우와의 대화에서 어린 왕자는 지구사용법을 어렴풋이 배운다. 길들임, 인내, 규칙 같은 지구에서 살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말해준 여우는 헤어질 무렵 "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어린 왕자를 떠난다.
별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은 별 속에 보이지 않는 꽃이 있기 때문이고,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며 집에서도 별에서도 사막에서도 아름다운 곳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저 별들 중의 한 별에 살고 있다가 마치 어린 왕자와 같이 지구별을 택하여 날아온 별아이이다. 지구에 와보니 세상에 길들여진 여우가 말하듯이 소중한 것은 감추어져 있어 우리가 볼 수없고 비슷하나 다른 사이비 같은 세상 속에서 무엇이 정통이고 무엇이 원본인지를 알아나가는 지난한 숙제 같은 일들이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원리로 우리와 숨바꼭질 하는 지구별에 와 있다.
별아이가 지구에 와 길들여지고 규칙 속에서 인내하고 참기만 한다면 별아이가 돌아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어린 왕자가 지구별을 떠나 또 다른 별에 당도했을 때 " 나는 저 별들 중의 한 별에 살고 있을 거야.
그 하나의 별에서 웃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쳐다보면 별이 모두 웃는 것처럼 보일 거야 그러면 아저씨만이 웃는 별을 보는 거지."라는 독백에서 사이비에 물들지 않고 지구별에서 길들여지지 않고 규칙과 인내로 피폐해지지 않고 어린 왕자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체 다른 별로 날아가 천진한 미소를 잃지 않는 별아이의 미소로 지구별의 아저씨들을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