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해 Dec 17. 2023

주어진 삶에서 느끼는 삶으로



2023.12.17

역사의 큰 물줄기는 기술혁신으로 구동된다. 기술혁신이 뭐 대단한 것 같이 보이지만 사소한 제안에서 시작하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반응을 일으켜 핵폭탄이 폭발하듯이 기술을 몇 단계 씩 신시키면서 문명끼리 충돌시키고  새로운 문명을 견인하는 구동축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문명은 사소한 발견을 그냥 넘기지 않 고정관념이 없 백지 그대로 세상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볼 수 있는 호기심 많은 신세대가 구태의연 면서 안주하길 좋아하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이 심드렁한 구세대를 대체하는 지난한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인류의 기술혁신은  되면 되고 안되면 말고 같은 한가한 명제가 아니다. 기술혁신이 일어난 대부분의 시기는 죽고 사는 문제가 경각에 달렸을 때이다. 이것을 만들지 않으면 굶어 죽고 저것을 만들지 않으면 정복당해 죽고 이래 저래 죽을 처지에 놓일 때 인류는 정말 죽을힘을 다해 지혜를 짜내어 기아와 전쟁과 같은 난관을 기술혁신이라는 전가의 보도로 돌파했던 것이다.

지금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누리는 대부분의 기술이 전쟁기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외로 존재한다.
폭탄이나 탱크는 전쟁을 수행하는 껍데기 하드웨어일 뿐 그 전쟁무기를 수행하기 위해 발명된 수많은 기술과 응용이 소프트 웨어와 하모니를 이루어 전투를 치루어 나가고 전투와 전투 속에 치러낸 전쟁을 통하여 우리 인류는 한 발자국 씩 전진하여 지금의 현대문명을 구동하고 있는 수많은 기술혁신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류는 전쟁을 통하여 기술혁신의 절박함을 느끼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술혁신의 결과물을 전쟁이 끝난 다음 평화가 오면 누리는 삶을 반복하는 것이다. 즉 시련을 통해 성장하고 좋은 시절이 오면 행복하게 누리며 사는 삶의 이치가 전쟁과 평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따라서 역사는 전쟁과 평화의 이중주로 울려 퍼지는 심포니 같은 음악인지도 모른다. 전쟁이라는 과격한 악기만 연주되어서도 안되지만 평화라고 하는 한껏 늘어지고 잔잔한 악기만으로도  역사라는 교향곡은 완성되지 않는다. 전쟁과 평화라는 강약이 균형과 하모니를 이룰 때에 역사는 전진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20세기 전지구적 규모의 치열한 세계대전을 치낸 인류의 문명이 전쟁을 통한 기술혁신에 힘입어 비약적인 발전을 전후에 이루어 냈다. 우리 전후 세대는 전쟁을 치루었던 세대가 피와 땀으로 필요성을 느끼고 개발했던 기술혁신의 열매를 고스란히 누리고 사는 세대다.

이처럼 느끼고 누리는 문제는 전쟁과 평화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세대를 이어가며 사는 우리 인류의 가장 큰 문제가 여기에서 기인한다. 전쟁이라는 기술혁신을 만든 세대에게는 고통을 느끼며 만들었기에 그 기술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으나 전쟁 이후 주어진 평화를 구가하는 세대에게는 누리는 삶마저 불만투성이로 변질되기 쉽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도 없지만 하늘 아래 그냥 이루어진 것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삶은 앞세대가 느꼈던 고통과 치열한 피땀의 결과요 성취물이다. 그 결과와 성취가 누리는 우리가 마음에 들 수도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를 사는 우리가 지켜야 할  첫 번째 금과옥조가 지금의 시각으로 그때를 재단하지 말아야 하듯이 완벽한 기술도 완벽한 제도도 완벽한 세상도 결코 존재할 수없음을 깨닫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이 앞서간 세대가 느꼈던 고통과 피땀의 숭고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일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채고 풍요로부터 탈출이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느낄 때 더 이상 전쟁의 검은 먹구름이 우리를 덮치는 상황을 조금은 미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전쟁을 살았던 세대는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느끼고 전후 평화가 오면 주어진 평화안에서 전쟁을 통해 개발된 기술혁신의 모든 열매를 철저하게 누리며 살아간다.

주어지고 누리고 하는 일상이 반복되면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기적에 대해 무덤덤하게 변하고 기술혁신의 역사성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간과하기 십상이다. 간과된 문제는 생략에 생략을 거듭하고 모든 것이 자본의 틀 안에 들어오고 만다. 과거를 모르는 자본은 욕심을 낳고 욕심은 욕구불만을 낳아 궁극적으로 기술혁신이 불러온 일상의 기적을 느끼지 못한다. 느끼지 못하면 누리지 못하고 우리는 혼란과 전쟁이라는 새로운 파랑새를 찾아서 집을 나선다.

 

작가의 이전글 그것만이 내 세상, 노래만이 내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