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9
견리망의가 고리타분한 것은 우리 사회가 의를 논하지 못하고 법과 죄 나아가 형과 벌을 이야기 삼아 날을 지새우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크다.
한 해를 돌아보면 나나 나라나 반성과 회한이 어떻게 없겠느냐 만은 의를 이야기하기에는 범죄 쪽으로 너무 나간 사회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보면서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느끼는 솔직한 소회이다.
의에도 리가 따라붙어 의리가 되고 법에도 리가 수반되어 법리가 되는데 의리는 어디에다 죽을 쑤어서 삶아 먹었는지 찾을 길이 없고 도처에 공동체를 분탕질하고도 모자라 법리를 이용하여 요리조리 빠져나갈 생각만 가득한 인간들의 법리다툼만 잔뜩 듣다 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야말로 태평성대의 끝자락에 살고 있는가 하며 어안이 벙벙해진다.
어이가 없다는 말이 있다.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다. 어이는 원래 어처구니라고 하는 맷돌의 손잡이를 가리키는데 콩과 같은 재료를 다 준비하고 맷돌을 갈려고 하는데 맷돌을 돌릴 나무 손잡이가 어디 가고 없는 상황을 어처구니 상실이라고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고 이제 돌리면 되는데 돌릴 손잡이가 없을 때의 망연자실함은 그동안의 준비와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안타까움과 절망이 배가되는 처지로 우리를 내몬다.
의리와 법리 나아가 도리까지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무늬인지도 모르겠다. 이 인간의 무늬, 인문 못지않게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자연의 기세다.
아마존 밀림에서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바람을 타고 뉴욕에 태풍을 일으킨다는 미국의 기상학자 로랜즈가 사용한 나비효과는 단순히 기후뿐 아니라 정치 경제, 심지어 전쟁 발발의 원인으로도 작용하며 평시에는 인간관계에서도 여지없이 증명되고 있다.
그러면 나비효과는 막을 수 없는 것인가? 꼭 그렇지 만은 않은 것이 대비와 준비 그리고 조심하면 결국 나비의 날갯짓은 찻잔 속의 바람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만용과 방심은 한심으로 발전하고 한심은 태무심을 불러일으켜 관계의 파탄이나 전쟁과 같은 재앙을 부른다.
지나간 한 해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전쟁과 테러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앞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지가 여실히 증명된 한 해를 살아내면서 이익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도리를 보면 냉전을 지나 각자도생의 정글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눈을 의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간이라는 공공재는 인간이 공간 속에서 무슨 짓을 하던지 무심히 흘러간다. 다만 그 시간은 원을 그리며 반복되어 인간이 세상 속에서 저지른 무심과 방심이 불쏘시개가 되어 의리를 훔치고 법리를 파괴하며 도리를 저당 잡힐 때 어김없이 자연의 기세로 되돌아와 세상의 흥망성쇠를 가속시킨다는 역사 앞의 진리를 세상의 이익에 앞서 깨닫는 사람이 도처에 생기는 새해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