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1
용수철을 강하게 누르면 강하게 튀어나온다. 우리가 한 생을 자유롭게 산다는 의미는 마치 용수철과 같이 작용과 반작용처럼 누르면 튀는 탱탱함이 있는 야성의 삶을 사느냐 아니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정처 없이 흘러가면서 길들여 사느냐라는 선택의 연속선상에 놓여있는 삶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삶의 적나라한 실체다.
문명은 우리에게 따뜻한 거처와 안정적인 먹거리 그리고 도처에 널려 있는 위험요소를 제거하여 주었지만 그로 인한 작용이 우리 몸에 끼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나무에서 내려와 정글을 빠져나오고 사바나를 질주하다가 강에 정착한 우리 인류는 지금 세포차원에서 엄청난 타임슬립 상황을 겪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걷고 달린다는 원초적 욕망을 자동차에 내어준 지 오래되었고 저물면 자고 동트면 일어난다는 원초적 본능을 인공조명에 의해 흩트려진지도 오래되었고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잔다라는 섭생의 기본도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 문명은 먹고 자고 움직이는 모든 곳에 문명의 이기라는 달콤한 미녀스파이를 파견하여 우리를 포섭하고 굴복시켜 돌아갈 다리를 불사르고 현대인을 포박했다.
누구는 환호하며 스스로를 밧줄로 묶으면서 자승자박 하기도 하였고 누구는 문명의 이기라는 미녀 스파이에게 저항하다가 된통 혼줄이 나고서야 묶여 나오고 가지가지 사연과 곡절이 있었겠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질식할듯한 현대문명에 갇혔다는 사실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은 자유를 제약받고 사는 수감자들의 심리상태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수작이다. 모두 다 수감되었지만 죄를 지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이구동성으로 변호사를 잘못 만나 죄 없이 여기에 수감되었다는 죄수들의 변명에서 세상을 사는 우리들의 원죄론이 생각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질곡의 시간을 견디고 탈출에 성공한 앤디의 뇌리에 스쳐간 쇼생크에서의 기억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문명 속에서 느끼는 추억과 무엇이 다른지 한번쯤은 되짚고 싶다.
쇼생크 탈출이던 문명으로부터 일탈이던 우리는 늘 여기서 살고 저기를 꿈꾼다. 음과 양이 교차를 하듯이 한 곳에 만족하는 법이 없는 것이 생명의 특징이다. 이리저리 두서없이 힘닿는 데로 돌아다니라는 생명으로서 부여받은 운명의 힘과 문명이 차려준 밥상에 앉아 먹고 마시고 문명이 마련해 준 닭장 같은 거처에서 자고 꿈꾸라는 숙명이 탈출을 꿈꾸는 자유로운 영혼과 갈등하고 있는 것이 지구에 온 우리가 진정 직면하고 있는 작용과 반작용의 적나라한 실체 아닐까?
문명에서 질식하기 전에 초원의 모닥불로 달려가는 모습이 쇼생크 탈출 아니 혹성탈출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헷갈리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