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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Dec 22. 2023

군작(群雀)의 재잘거림, 대붕(大鵬)의 날개짓



2023.12.22

내쉴 호 실흡, 호흡은 숨 쉬고 사는 모든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한 시도 쉬지 않고 해야만 하는 생명활동이다. 호흡이 경각에 달렸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가 숨을 거두기 전에 헐떡거리며 호흡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건강한 사람은 호흡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정도로 편안하고 여유롭고 티 내지 않게 호흡을 하므로 옆에 있는 사람이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참새가 분주하듯이 통이 크고 긴 호흡으로 생활하는 대부분의 생물의 행동은 유유자적하고 여유로우며 태연자약하며 담소자약하기까지 하다. 대붕의 날갯짓과 참새의 날갯짓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흡도 마시고 내쉬고 가 아니고 내쉬고 마시고로 우리 폐포 속의 공기를 비워야 새로운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이치다. 모든 생체활동은 이렇게 돌아가고 순환한다. 즉 내쉬어야 마실 수 있으며 비워야 먹을 수 있는 허허실실의 섭리로 나가 살아가고 세상이 돌아가며 우주가 운행하는 것이다.

다만 참새와 대붕이 호흡의 길이가 다르고 깊이가 다를 뿐이다. 세상사 모든 것이 이 호흡의 길이 호흡의 깊이를 가지고 다투는 이전투구라고 봐도 큰 무리는 없다.

대인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소인은 눈앞의 이익에 혹한다. 여기에는 시비곡직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숨을 내쉬기도 하고 들이마시기도 하는 호흡하는 존재이므로 멀리도 봐야 하고 가까이도 봐야 한다. 그러므로 대인과 소인이 적당히 어울려 살며 생명의 길항작용과 같이 당기고 밀며 수축하고 이완하는 적절한 균형 상태로 세상은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세상의 도를 거창하고 뭔가 있어 보여야 하며 영웅적 서사를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도란 이름 없는 참새 무리, 군작의 재잘거림부터 세상을 뒤덮을 기세로 날개를 펼치는 대붕의 비행까지 무엇하나 버릴 것 없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문명이라는 급행열차를 탄 우리 인류에게 고정관념과 같은 열차 궤도를 이탈한다는 것은 탈선이요 세상 속에서 사회적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공포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가지는 원초적 두려움이다.

이 근원적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도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을 어렵게 만든다. 주어진 궤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열차의 일등석에 앉아서 가겠다는 욕망의 비대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점입가경이다.

우리 인류는 생물학적으로도 돌연변이라는 새로운 형질이 발현되고 강화되는 진화의 특이점을 넘어서 지금까지 생존했다. 중간중간 절멸의 위기를 돌연변이를 통한 적자생존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우리 인류 앞에는 우리가 이룬 풍요의 결과가 역설로 다가와 생물학적으로 번식을 통해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적자생존을 도모한 진화 메커니즘의 호흡이 경각에 달렸고 이를 대체할 물질문명을 통해 만들어낸 로봇이나 인공지능이라는 생산기술을 가지고 적자생존을 도모하는  초유의 물질적 돌연변이가 긴 호흡으로 우리 인류에게 다가온다.

그 귀추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생명줄의 새로운 길이 물질기반 인공지능이라는 돌연변이를 통해 인류가 영속하는 새로운 길을 찾는다면 노자가 말한 도가도 비상도가 정녕 실현되는 것인가? 군작의 재잘거림도 대붕의 날갯짓도 생물학적 번식을 통한 생명의 적자생존 방식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그 많던 전깃줄 위의 참새는 다 어디 가고 참새 개그도 사라진 지금 인류를 뒤덮는 물질문명이라는 대붕의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날개가 침묵의 봄을 지나 동토의 겨울 위를 뒤덮고 있는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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