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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Dec 23. 2023

배부른 돼지, 배고픈 소크라테스



2023.12.23

동지가 지났다. 24 절기의 스물두 번째 절기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지에 태양계를 살았던  원시시대  우리 조상들은 힘을 잃어가며 사그라지는 태양을 보면서 이대로 세상이 멸망하는 것이 아닌가 장탄식을 하면서 이삼일을 보내다가 12월 25일 전후에 다시 태양이 살아나는 것을 확인하고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태양을 향해 환호하고 기뻐했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예수탄신일로 기념하는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동이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태양을 두고 보면 한 해의 시작도 1월 1일이 아니고 동지 다음날이 일 년의 시작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stay hungry,  stay foolish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라는 스티브 잡스가 동양철학의 정수인 불교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세상을 단순화시켜 보아야 진리에 접근한다는 선(禪)에 매료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잡스가 본 현대 문명은 복잡 다난하여 실타래처럼 엮인 온갖 욕망의 집합체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나고 자란 잡스가 던지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배부른 돼지 서구사회는 누구도 답하지 못했고 고행을 통한 수행을 통해 열반에 든 배고픈 테스형, 부처님은 일말의 힌트를 잡스에게 준 모양이다.

부유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듣기 어려운 소리가 뱃속에서 배고플 때 나오는 꼬르륵 소리라고 한다. 우리는 배고프면 죽는 줄 알고 배가 고프기도 전에 습관적으로 먹는 데 아주 익숙해져 있다. 아침 점심 저녁 간식 밀려드는 먹거리의 홍수 속에서 자제력을 발휘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음식물을 섭취한 결과가 비만을 가져왔고 비만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라는  신종질환을 가져왔으며 이 모든 것이 배부른 인류를 재창조했고 우리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난제에 직면한 것이다.

우리의 뇌가 호두 껍질 속에 든 호두 알맹이 같이 쪼그라들어 주름이 잡힌 이유가 우리 인류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직면했던 온갖 어려움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면 단순하게 보는 선(禪)에 제대로 다가서는 것이 아닐까? 인류는 인류 생명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지독한 배고픔에서 탈출하고 생존하기 위해 온갖 머리를 짜내고 생각을 총동원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몸보다는 머리를 힘보다는 지혜를 갈고닦았을 것이다.  1.2킬로그램에서 1.4킬로그램에 불과한 인간의 뇌가 에너지의 20%를 사용하는 까닭이 인류의 기아의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처럼 굶주림에 놓이면 인간은 살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낸다. 그 지혜의 산물이 우리가 이룩한 문명이다. 문명은 이처럼 기아와 결핍을 탈출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맺힌 열매다. 달콤한 문명이라는 열매를 입에 물고 안주하며 더더더를 외치며 편하고 쉬운 길로 달려가는 모습이 결핍에서 빠져나오고 풍요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배부른 인류의 자화상이다.

몸무게의 2% 남짓한 뇌가 우리 몸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의 20%를 쓰는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의 여정이 뇌정보 기반의 문명을 만들어 냈고 우리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가져다준 풍요의 역설로 우리의 선택은 또다시 반동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를 너머 AI까지 한 생에 이 모든 인류의 문명진화를 생생하게 온몸으로 겪고 있으면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소회가 남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현대문명의 파일럿 모델인지도 모르겠다. 가치관의 혼란과 머리와 몸의 부조화는 물론이고 몇 세기를 걸쳐 일어나는 문명의  충돌을 한 세대만에 섭렵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는 혼란과 난맥상은 일견 당연하다고 치부하는 아량을 가져야 함에도 욕심이 앞을 가려 완벽함을 기하려 한다면 늘 우리의 선택은  배부른 돼지가 되기에 적당하다.

문명이 가져다준 풍요가 비록 우리를 배부른 인류로 변모시켰지만 여전히 도도히 흐르는 진화의 시계는 기아와 결핍을 이겨내고 지혜를 극대화한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인류문명의 롤모델로 여전히 유효함을 한시도 잊지 않을 때 인류 문명에 있어 파일럿 모델에 불과한 우리가 다가올 후손에게 무엇을 물려줘야 할 것은 무엇인지 보다 자명해지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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