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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Dec 27. 2023

하나가 둘이 되는 도(道)와 둘이 하나 되는 덕(德)



2023.12.27

생명은 단세포 생물이 다른 세포를 만나 다세포 생물이 되고 다세포 생물이 분화되어 단세포로 바뀌어 가면서 생성과 결합 사멸의 순환이 끝도 없이 반복하는 일시무시(一始無始)에서 시작하여  일종무종(一終無終)으로 끝나는 천부경 81자에 담겨 있는 숫자를 가지고 서수, 기수, 횟수의 다의적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천부경 81자의 복잡한 해석은 차치하고 둘이 하나 되고 하나가 둘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뭐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만남과 헤어짐이다.
세상만사는 인과와 응보의 필연으로 엮여서  회자정리 거자필반 (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우주법의 원리로 돌아가는 미시계와 미시계가 만들어내서 종합하는 개별 생명 간에 일어나는 세상법의 원리,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삼간이 돌아가는 거시계들 간의 사건과 현상으로 무한반복 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시계를 파고드는 자연과학의 영역과 거시계를 연구하는 인문과학, 다시 말해 우주법을 탐구하는 자연과학과 세상법을 조망하는 인문과학이 서로 밀고 당기는 길항작용이 중첩되고 반복되는 곳이 우리가 사는 행성 지구다.

크게 보면 미시계에서 일어나는 생명활동을 세포와 세포가 만나는 만남이라고 한다면 거시계의 개별생명이 부딪히고 싸우며 일어나는 사멸과정은 세포와 세포가 헤어지는 흩어짐이라 부를 만하다. 이처럼 마치 수학의 적분과 미분과 같이 우주법의 섭리에 따라 만나고 세상법의 원리에 따라 흩어짐이 반복되는 것에서 우리의 생명과 숙명은 예외가 될 수없다.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도의 도정에서 만남의 기쁨을 만끽하는 운명에 즐거워한다고 한다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사멸하는 덕에 들어서면 한편으로 슬프고 아쉽지만 보다 나은 생명창조를 위해 자기 한 몸을 바치는 숙명을 담담히 관조할 줄도 알아야 우주와 세상 속을 한 바퀴 돌리는 사람으로서 살 수 있는 것이다.

미시계를 탐구하는 자연과학자의 눈이나 거시계를 들여다보는 인문과학자의 시각이나 우주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생로병사의 필연에 벗어날 수없음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시계의 세상에서는 미시계의 자그마한 성과를 침소봉대하여 우주법에 지배를 받는 생명현상의 비밀을 알아낸 것처럼 우쭐하여 세상 속의 인간을 호도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생명을 창조하는 미시계의 우주법은 생명을 파괴하는 거시계의 세상법과는 구별된다. 이것은 마치 적분과 미분이 다르며 분해와 조립이 다르고 궁극적으로 생명과 기계가 다른 이치다.

세포와 세포끼리 무수한 만남과 분열의 결과가 생명이라면 생명은 수많은 세포의 사멸을 딛고 일어선 기억이 있다. 개별세포의 유전자에 남아 있는 만남과 분열의 기억만 소환할 수 있어도 거시계 세상 속을 사는 우리가 바라보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저절로 들 수밖에 없다.

비록 우리가 기계문명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몸 안에 있는 시원을 알 수 없는 그대는 우주법에 따라 만남과 헤어짐을 감당하고 창조한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하나가 되는 우주적 섭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도덕적 존재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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