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8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으로서 두 방랑자가 실체가 없는 인물 고도(Godot)를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내용의 희비극이다.
현대사회에서 영웅이 과연 나올 수나 있을지 궁금하다. 대개 영웅은 신비롭다. 문명이전에 상상의 동물 용을 무찌른 전설에서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까지 영웅의 서사와 행적은 드라마틱하며 오리무중 하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 라는 말과 같이 영웅은 영화의 주인공같이 판세가 기울고 패색이 역력할 때 순식간에 등장하여 판세를 뒤집고 승리를 안겨주는 캐릭터로 우리 모두에게 각인되어 있다. 어쩌면 영화나 드라마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이러한 장면은 너무나 친숙한 기억이다.
용이 여러 동물들의 장점을 짜깁기해놓은 상상의 동물이듯이 영웅은 여러 인물들의 장점을 집대성하여 만든 각본과 서사 이야기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승리자의 기록으로 점철된 인간의 역사에서 영웅의 첫 번째 조건은 승리이다. 패배한 영웅은 희대의 간웅이나 역적으로 몰려 난도질당하고 폄훼된 체로 역사의 뒤안길로 묻히기 일쑤이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게임의 승패와 달리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경우도 꽤 흔하다. 역사는 곤두박질을 자주 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함으로써 무덤에서 살아 나오는 영웅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어쩌면 무덤에서 살아 나온 영웅이 당대의 영웅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영웅인지도 모르겠다.
무덤에서 살아 나오려면 일단 죽어야겠지 죽어도 그냥 죽어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자기 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용기와 헌신은 영웅의 필수조건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하여 종을 울리나 이다.
이 무엇이 영웅이 되어 청사에 이름을 남기느냐 마느냐의 시금석이요 바로미터이다.
영웅과 필부의 차이는 딱 한 가지로 판별된다. 영웅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는 사람이고 필부는 실패한 과거를 낱낱이 파헤치고 해부하며 편안한 현재에 앉아서 피와 땀이 서려있는 과거사를 완벽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신파를 읊으며 공동체를 과거에 가두고 현재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 그 필부는 세상에서 동원할 수 있는 온갖 미사여구를 가져와서 말 만하면 도깨비방망이 같이 장밋빛 미래가 열리는 것같이 공동체를 호도하고 자신은 자기가 한 말에 취하여 장밋빛 미래를 연 영웅인 양 코스프레를 하면서 공동체에서 취할 수 있는 온갖 예우와 혜택을 법을 어겨서까지 취하여 과거를 팔고 미래를 저당 잡혀 현재에 안주한다.
이 뿌리 깊은 필부의 악행이 더해지면 공동체는 망한다. 장밋빛 미래는 현재를 사는 우리의 피와 땀 그리고 정확한 판단 없이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준엄한 역사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혼군이 명장을 죽이듯이 현대의 대중들은 필부에 속아 영웅을 매장한다.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라는 방랑자가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도(Godot)는 어디에 있는 건지 눈을 닦고 살펴봐도 보이지 않고 우리가 기다리던 고도는 오지 않고 자웅(雌雄) 쟁패의 건곤일척의 싸움이 영자 (英雌)의 전성시대를 거쳐 페미니즘시대로 진입하면서 여성의 완벽한 승리가 확인된 지금 고도를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나타난 우리들의 영웅은 여성들이 열광하는 트롯가수 임영웅(?)으로 굳어지려나 헛웃음과 농담이 절로 나온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은 도처에 존재하고 우리를 압박하지만 진정한 우리들의 영웅은 이미 우리를 다녀갔고 몸을 살라 우리 공동체를 살려냈으며 그 살려낸 공동체를 사는 우리 가슴에 미래에 대한 빛을 뿌리고 죽어간 그리고 죽어서 살아난 히든히어로의 모습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 가슴속에 숨 쉬면서 우리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숨죽이며 기다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이것이 우리가 기다리는 고도(Godot)이며 우리가 보고 싶은 영웅의 진정한 면모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