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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Dec 29. 2023

틈과 틈 사이 그리고 관계 속을 살아가는 한 생



2023.12.29

어디다 틈을 줘, 틈틈이 할 일을 하거라, 틈새 전략, 바위틈에 피어난 한 떨기 꽃, 틈을 비집고 들어 가거라.
틈은 트다의 명사형이다. 말문을 트고 관계를 트고 물꼬를 트고 와 같이 트다는 것은 소통의 의미다.

인간으로 태어나 공간 속에서 시간을 살아 내려면 이 사이사이 벌어진 틈, 틈새를 메우는 일이 거의 전부이다시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분주히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메운 틈새가 어느 틈인지는 모르지만 알게 모르게 벌어지면서  도로 인간 시간 공간, 즉 삼간(三間)이라는 무지막지한 틈이 생기고 우리는 이 거대한 삼간 앞에 망연자실하게 서서 결국 우리는 인, 공, 시라는 본질을 살 수없고 사람과 사람사이 허공과 허공사이 때와 때 사이, 즉  인간과 공간과 시간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과 숙명임을  절감한다.

틈은 사이로 이어지고 사이는 관계로 발전되면서 세상 속에서 놓인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무수한 관계를 만난다. 무촌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가 일촌인 부모를 만나고 이촌인 형제자매를 만나며 삼촌인 백부 숙부를 만나면서 도(道)로 얽힌 친가와 덕(德)으로 엮인 외가와 처가까지 그야말로 사돈의 팔촌까지 얽히고 엮이는 가족, 친족, 외족, 처족의 틈바구니 사이의 일원으로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족속에서 빠져나오면 우리는 배우는 단계에서는 학맥을 형성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혼맥을 타고 세상에 나아가서는 인맥에 둘러싸이게 된다.
학맥과 혼맥과 인맥으로 연결된 산맥, 즉 산절을 나의 힘으로 넘어가서 골짜기에 접어들면 시원하고 청량한 계곡물이 나오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시냇물이 되고 이제 배를 띄어야 건널 수 있는 강을 만난다.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뱃사공의 덕분(德分)과 강어귀에 배를 대는 덕택(德澤)이 결합되어 뱃사공과 나룻배의 덕분과 덕택으로 강을 건너는 수절을 넘어가는 산절수절을 겪다 보면 세상이라는 관계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렇게 틈에서 시작하여 사이가 되고 사이가 관계로 발전하면서 우리 인간은 시간을 흘려보내며 세상이라는 공간 속을 유영하는 우주의 여행객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관계가 인연에서 시작되어 인연으로 끝나는 덕과 업이 교차하는 희비쌍곡선 같은 파도를 타고 서핑을 즐기는 서퍼에 비유하면 우리의 신세가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서퍼의 도전적인 본능이 집채만 한 파도를 즐길 수도 있고 잔잔한 파도에 보드를 타면서 물결에 온몸을 내어 맡기면서 파도를 관조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 세상에 발을 디딘 내가 생로병사의 선택을 하고 있다는 감각뿐만 아니라 삼간(三間) 속을 살아가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틈과 사이마저도 나 스스로 메꾸고 벌어지게 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만 기를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번뇌 특히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틈과 사이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더 이상 괴롭게 살면서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여백을 가진 인간이라는 말은 고정된 본질이 없는 인간이라는 정의에 딱 맞는 말이다.

우리는 틈이 있고 사이가 있으며 나아가 그 틈과 사이만큼 융통성과 여백이 있는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공간 안에 살면서 시간을 보내면서 겪는 희로애락 오욕칠정은 틈과 사이가 있음으로써 여백과 융통성을 가진 우리가 지구에 와서 반드시 누리고 가야 할 소중한 감각인지도 모른다.

틈과 사이가 있으므로 인간이 되었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우리 인간의 본질이자 우리 자신 그 자체이므로 더 이상 관계에 괴로워하기보다는 집채만 한 파도를 즐기는 서퍼의 심정으로 틈과 사이에서 출발한 인간으로서 관계를 즐기고 관조하는 나로서 멋지게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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