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30
장자의 호접몽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꿈과 생시는 경계가 어찌 아슬아슬하다. 어젯밤 꾸었던 꿈이 진짜인지 그 꿈을 기억해 내려 애쓰고 있는 현실의 나가 진짜인지가 늘 헷갈리기가 다반사다.
인생이 일장춘몽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짧게 자면서 꿈을 꾼다. 왜 꿈이라고 하고 왜 꾼다라고 하는지 궁금하지만 꿈은 수면처럼 인생이라는 일장춘몽 속에 알알이 박혀있는 점과 같고 그것은 마치 석천서당과 서석지 그리고 부석사 현판의 돌 석자 안에 박혀있는 잔돌 같은 모습으로 우리가 매일 밤 꾸는 꿈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일장춘몽보다 매일 자면서 꾸는 꿈이 더 중요하듯이 바윗돌 보다 잔돌이 더 중요하다고 석천서당의 유림의 거두부터 서석지의 머리를 식히며 풍류와 시를 즐기던 시인 묵객까지 심지어 출가하여 당나라 유학까지 갔다 온 주유천하 불국정토를 섭렵한 의상대사까지 부석사에 일필휘지로 갈겨쓴 현판에 아로새긴 돌 석자 안의 잔돌 같은 검은 점의 정체가 자못 궁금하여 세밑까지 화두를 품고 여론조사까지 하기도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 중요하듯이 돌 석자 안의 자갈 같은 검은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게 꿈이 되었던 돌이 되었던 한 번 더 생각하고 이리저리 궁리하고 이래도 해석해 보고 저래도 해석해 보는 격물치지의 경지까지 가봐야 그것이 학문이던 풍류이던 부처의 깨달음이던 근처에 가서 명함이라도 낼 수 있음을 후학들에게 넌지시 알려준 것은 아니었을까?
학문을 하거나 구도의 길을 걷거나 심지어 풍류에 취해 한 세상을 보내도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인생은 일장춘몽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일장춘몽은 깨지 않고 이어지는 연속극이 아니라 매일매일 잔 자갈 같이 떨어지는 꿈을 꾸고 꿈에서 깨어나고가 죽을 때까지 반복되는 단막극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인생의 일장춘몽은 욕망과 탐욕으로 얼룩지기 쉽지만 매일밤 꾸는 꿈은 예지몽이 되기도 하고 일장춘몽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무의식의 세계에서 알려주면서 욕망에 오염된 감정의 찌꺼기를 정화해 주는 역할도 한다. 비록 깨어나면 아무 기억도 없이 사라지지만 우리가 평생 일장춘몽을 살기 위해서는 매일 꾸는 꿈이 없다면 며칠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모두가 분주히 호접몽 속에서 주인공이 된듯한 착각 속에서 조직의 일원으로 나름 뿌듯하게 하루를 한 주를 일 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기실 우리는 주역에서 말하는 무성유종 (无成有終)의 일장춘몽을 살고 있는 자갈 같은 잔돌 신세다. 즉 이룬 것은 없고 끝만 존재하는 초라한 지구의 스몰보이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자각만 하고 있어도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고민과 걱정의 대부분은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더 이상 일장춘몽에서 나를 꾸미고 너를 꾸미고 모두를 꾸미는 행동이 부질없음을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내게는 꿈에 관한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부모님과의 만남 못지않게 부모님과의 별리의 아픔은 일장춘몽을 사는 우리에게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천형과도 같은 것이다.
인생이라는 일장춘몽 속에서 한 세대도 전에 하룻밤 꿈속에서 보내 드린 아버지와의 이별의 아픔도 한 세대가 지난 후 일장춘몽의 현실세계에서 손과 손을 잡고 입과 귀를 섞어면서 보내 드린 어머니와의 임종 순간에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하룻밤 꿈도 평생의 일장춘몽도 이룬 것은 없고 끝은 있다는 것만 알아낸 것만도 일장춘몽을 깨고 나면 대견한 진리이자 유산으로 내게 다가올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