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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Dec 31. 2023

황홀하게 다가와 홀연히 사라지다



2023.12.31

한 생을 산다는 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황홀하게 다가와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라면 동감이 될지 모르겠다.

우리는 살면서 처음이라는 말에 꽤나 집착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은 설레고 가슴 뛰며 기다려지고 무엇보다 기대가 되는 것이다. 마음을 이야기할 때도 초심을 말하고 경험을 논할 때도 첫 경험을 잊을 수 없으며 신랑 신부가 처음 만나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를 합쳐서 초례라고 하고 식을 치르는 장소도 초례청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인륜지대사인 혼례에 있어서도 처음이라는 의미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각별한 의미로 우리 모두에게 다가온다.

애술가들이 마시는 대한민국 대표 술 소주에도 온갖 소주이름이 붙었지만 그중에서도 술술 입에 붙는 이름이 ' 처음처럼'이다. 취향에 따라 소주의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처음이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는 누구나에게 두근대는 마음으로 애술의 경지로 우리를 이끄는 상상을 처음처럼 하게 한다.

우리를 황홀하게 하는 인생에서의 대부분의 만남은 면밀히 따져보면 모두가 처음이다. 즉 비슷비슷해 보여도 시간이 다르고 공간이 다르고 인간이 다르므로 사실상 똑같은 사건 똑같은 만남 똑같은 상황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하여 비슷한 상황을  한 묶음으로 묶어 일반화하려는 강력한 기전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뇌정보적인 착각을 통해 외부 환경에 대한 정보를 단순화하고 일반화하는 일련의 활동이 우리가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을 건설하는 우리 인간의 로직이며 메커니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에서 빠져나와 문명을 건설하는 도정에서 우리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잃어버린 것들이 수없이 많겠지만 그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오감으로 느끼는 감수성이다. 황홀하다는 의미는 단순히 뇌라는 하나의 장기가 느끼기에는 버겁다. 오히려 뇌는 문명화되면서 생존을 위하여 무수히 착각을 강요받은 장기이므로 황홀과 같은 핵폭탄이  핵분열하는 것과 같은 극치감을 감당할 수 없는 지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황홀이라는 극치감은 뇌정보 육체정보 유전정보가 하나로 합치되어 들어맞는 마치 로또와 같은 현상이다. 인생에서 자주 느낄 수도 없고 자주 느껴서도 안 되는 순간인 것이다. 단지 우리는 오감을 살리고 뇌정보뿐만 아니라 육체정보 유전정보를 잘 갈고닦음으로써 우리가 자연을 떠나 문명사회로 접어들면서 비대해진 뇌정보 기반의 감각이 생존을 위한 거대한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행동한다면 한 생에서 마주치는 황홀한 순간을 어느 정도 다룰 수는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뇌정보 문명의 끝판왕에 와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모든 문명의 지향점이 뇌를 중심으로 하는 시각문명에 의존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육체정보나 유전정보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수 있다. 그러나 수학적 계산을 위해 만든 똘똘한 계산기로 출발한 컴퓨터가 이제 인간의 이성과 감성까지 계산으로 풀어내어 우리를 아연하게 하는 인공지능 세상을 목전에 두고 우리에게 황홀하게 다가왔다가 홀연히 사라진 것들은 도대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우리가 기계가 아니고 인간  나아가 사람임을 확인하는 황홀한 휴먼 프로젝트가 아닐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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