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문제가 많은 나라, 문제가 더 많은 나라

by 윤해



2024.01.07

문제가 많은 나가 모여 문제가 많은 나라를 만들고 문제가 더 많은 나가 모여 문제가 더 많은 나라를 만든다. 하나마나한 이 명제가 세상의 모든 모순을 담고 있고 , 모든 갈등의 원인이라면 동의가 될지 모르겠다.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어떤 의미에서는 지구상의 독특한 생명체이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만을 추구했다면 우리는 꽤 단순하게 살고 밋밋하게 생활했으며 세상 속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오만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답을 내야 하는 처지로 내 몰리지도 않았음이 분명하다.

정글의 나무에서 내려와 사바나를 거치면서 지구 끝까지 대를 이어가며 퍼져나간 우리 현생인류가 직면한 오만가지 문제에 대한 대답의 여정이 위대한 지혜자의 역사라는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을 가지고 우리 인류는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해답을 알아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이며 이것이 어쩌면 우리를 여기에 있게 한 원동력이며 세상의 섭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인문학적 용어인 섭리와 공학적 용어인 메커니즘이 상이한 개념인 것 같아도 잘 관찰해 보고 원리를 알아낸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유사한 개념임을 알 수가 있다. 지혜자인 우리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종과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무엇이 될까? 여러 가지 대답이 있겠지만 문제를 만드는 능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다는 데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우리 인류는 그가 나무 위 정글에 있을 때에도 사바나를 걸어가면서도 강가에 정착하였을 때에도 쉬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의문을 가지고 문제를 만들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해답 안에 또 문제를 만들고 해답을 찾는 뫼비우스의 띠 (Moebius strip)처럼 끊임없는 연속적인 문답을 통해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러므로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야말로 우리 인류를 지혜자로서 여기까지 오게 한 일등공신이 아닐 수없다. 인류문명의 지속성은 끊임없는 문제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해답을 찾지 못하는 답답함 그리고 지금 여기서 완벽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대중에게 투사시켜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심과 사심이 순리가 아닌 무리수가 되어 무리를 도탄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 역사에 살아 숨 쉬는 문제를 푸는 섭리이자 메커니즘 아닐까?

인류역사를 관통하고 흐르는 도도한 섭리는 사필귀정이다.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오래 속일 수는 없는 이치와 통한다. 세상 속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면서 잠시 잠깐 대중을 잘못된 길로 몰고 갈 수는 있어도 조금만 지나면 그것이 옳지 않은 해답임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그 길로 대중을 몰아넣은 인간은 역사의 죄인으로 길이길이 오명을 남긴다. 다만 그 여파가 짧은 시간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피해를 입히는 참사만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할 뿐이다.

문제가 많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불안해하거나 불평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살아있는 동안 늘 우리와 함께 하는 동반자이요 친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제가 없으면 만들어 내기까지 하는 존재다. 그리고 문제가 더 많은 나라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자위하고 한편으로는 해답을 벤치마킹 하면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객관화하고 지속가능한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면 된다. 다만 잣대는 분명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지속가능한 옳은 일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자리매김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탁란적 이기심이 활개 치지 않게 조절하는 일이 정치이며 정치가 정치가 된 연원이다.

비판적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리 호모사피엔스의 본능에 가깝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는 것은 38억 년 생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본능을 억제하는 강력한 이성의 영역이다.
마치 사흘 굶은 사람 앞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보고도 본능은 단숨에 꿀꺽 먹으라고 재촉하고 성화를 부려도 단련된 이성은 지금 먹으면 안 되고 남겨서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지속가능한 미래를 도모하는 마음을 먹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이며 의로운 행동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즉 지금 먹자는 본능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도모하자는 이성의 치열한 각축장이 세상이며 세상의 정치다.

결론은 이미 인류의 역사가 내렸다. 다만 세상 속 인간들의 탐욕과 욕망이 가끔씩 배를 몰아 산으로 가게 할 뿐이다. 우리는 사필귀정의 유일한 섭리이자 메커니즘인 본능이 충동질하는 이익보다는 이성이 밝히는 옳은 일에 한 표를 던지기만 하면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간이 쏜 화살이 떨어지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