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9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다. 그 승리는 단연코 전쟁의 승리가 압도적 페이지를 장식한다. 그래서 역사를 전쟁사라고 하는지 도 모른다. 어쩌면 역사책 속에 양념으로 간간히 들어가는 평화는 전쟁사에 비하면 그저 별책 부록 정도 아닐까 생각된다.
전쟁사의 주역은 누가 뭐라 해도 전장에서 작게는 수천 많게는 수십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장군이다. 전장은 문약한 책상물림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참하고도 피비린내 나는 지옥의 한복판이다. 춘추전국시대가 아니라도 한 뼘의 땅을 얻기 위해 전장에서 스러져간 넋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천문학적 숫자일 것이다. 이 소중한 생명들이 장군들의 판단 하나에 생사가 결정되는 긴박한 순간에 패장이 되느냐 청사에 길이 남을 명장으로 남느냐는 종이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른다.
전쟁사는 어른들의 네버앤딩 스토리이다.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의 전쟁에서부터 현대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지루할 만큼 이어지는 인간들의 행위가 전쟁이다. 왕조시대의 군주는 전쟁 중에는 총사령관이다. 총사령관은 유능한 장수를 기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가 만사다. 이 인사를 잘하면 전쟁에서 승리하여 역사에 남는 명군이 되어 탄탄한 제국을 만들어 자자손손 물려줄 궁리를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전쟁사의 시스템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말 타면 경마 잡고 싶다고 군주의 욕심은 한량이 없어진다. 값진 승리를 일궈낸 명장들이 언제 회군하여 자신을 칠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골몰하다가 누구도 흉내 낼 수없는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점점 더 자신만의 메타버스에 올라타 현실과 유리되기 시작하다가 급기야 잠도 못 자고 정신이 혼미하여 망상에 빠져 그 유명한 토사구팽의 고사를 기어코 실현시킨다. 물론 양념으로 온갖 아부와 술수로 전리품에만 마음을 두고 있는 간신들이 가세하면 이 속도는 급물살을 타고 나라에 남아 있는 명장이란 명장은 씨가 마른다.
명장이 사라지고 전리품으로 배를 채운 간신들만 우굴거리는 조정에서 이제 명군에서 혼군이 된 군주의 앞날은 자손만대는커녕 삼대도 못 가서 망하게 되어 있다. 춘추전국 시대를 통일한 최초의 진제국 흥망사가 정확히 이것을 증명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의 군주는 선거를 통해 한 표를 행사하는 국민이다.
그러면 전쟁을 수행하는 장군은 누구일까? 바로 선거를 통해 선출 돠는 선출직 공무원이 현대의 명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한 표를 가지고 있는 국민의 선거권이 잘만 행사되면 명장을 두게 되고, 잘못 행사되면 국운을 기울게 할 패장을 뽑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군과 명군은 그리 멀리 있지 않고 민주국가에서 투표권을 쥐고 있는 국민들 각자각자의 손안에 있는 것이다.
혼군으로서 한 표를 던지는 국민들의 미래는 망국으로 이끌 패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에 반해 명군으로서 한 표를 행사하는 국민들의 미래는 번영으로 이끌 명장의 포효가 쩌렁쩌렁 온 나라에 울린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명장을 뽑아 놓은 명군도 언제든지 명장을 시기하는 간신들의 발호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명군에서 혼군으로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명장은 저절로 토사구팽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국가는 머지않아 지옥도가 열린다.
누가 명장이며 누가 패장이고 또 누가 간신인지 투표를 통해 걸러내는 일이 우리가 명군이 될지 혼군이 될지를 가리는 시금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