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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by 윤해



2024.04.1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을 견디면 믿어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알렉산데르 세르게이비치 푸슈킨의 시이며 젊은 날 힘든 시기를 보내는 우리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함께 주는 명시라고 기억한다.

천 층 만 층 구만 층,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경험은 모두 비슷해 보여도 갑옷을 풀고 속살을 보면 그렇게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원리이다.

그 다름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서로 이해를 하고 이해를 통해 사랑을 나눔으로써 공동선을 찾아가는 지난한 여정이 소통이요 삶이며 무엇보다도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말 한마디 글 한 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연원이 무엇인가 하고 한 번쯤은 뜸을 들이고 살펴보는 것도 오해를 불식시키는 방법이며 잘못된 오해에 기반한 미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지혜의 일환이다.

자연의 섭리(攝理)와 세상의 원리(原理)가 다른 점은 자연은 호 불호가 없고 세상은 호 불호가 명백히 갈린다는 점이다. 한자로 손 옆에 귀가 세 개 달린 섭리(攝理)는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삼간을 각각 귀 세 개로 듣고 그 삼간의 소리를 종합하고 난 다음 손을 쓰는 이치인 반면에 언덕의 이치인 원리(原理)는 말과 글로 만든 사이버 세상에서 인간의 소리도 들을 수없고 시간의 소리는 언감생심 귀를 막고 살면서 그나마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살지'라는 비빌 언덕 하나 믿고 이전투구와 생존경쟁의 세상에서 이 말에 속고 저 말에 넘어가며 이 글에 환호하고 저 글에 한숨 짓는 일희일비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마존 밀림의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뉴욕에 태풍을 일으킨다는 미국의 기상학자 로랜즈가 사용한 나비효과는 단순히 기후뿐 아니라 정치 경제, 심지어 전쟁 발발의 원인으로도 작용하며 평시에는 인간관계에서도 여지없이 증명되고 있다.

그러면 나비효과는 막을 수 없는 것인가? 꼭 그렇지 만은 않은 것이 대비와 준비 그리고 조심하면 결국 나비의 날갯짓은 찻잔 속의 바람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만용과 방심은 한심으로 발전하고 한심은 태무심을 불러일으켜 관계의 파탄이나 전쟁과 같은 재앙을 부른다.

예로부터 인간관계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아서 수십 년 이어져 온 관계도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일이 허다하게 발생한다. 인연이 다했다고 애써 위안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사려 깊게 사용하지 못한 말 한마디 단어 하나에 수십 년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경험은 살수록 늘어난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현실 세상에서는 몸짓 표정을 통하여 사소하고 부주의한 글 하나 말 한마디가 서로 간의 관계에서 결정적 역할을 못하지만 얼굴도 못 보고 오로지 한 줄 글로 소통을 하는 SNS 세상에서는 더욱더 조심해야 되는데 이 지점이 많이 어렵다. 왜냐하면 모두 나는 조심해서 소통한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그 소통하는 단어에 대한 온도차가 아주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터넷 세상의 언어는 되도록 순화해서 써야 하며 평소에 무심코 툭 하고 던지던 언어습관으로 글을 쓰고 소통하다 보면 본의 아닌 오해와 억측으로 말씨가 도화선이 되어 마음은 그렇지 않은 데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나 깨나 불조심뿐만 아니라 말조심도 중요하고 하고 싶은 말이나 글이 있다 하더라도 한 번쯤은 역지사지의 과정을 거쳐 출력하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실수나 실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바로 사과를 하거나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다. 계속적으로 자기주장을 하거나 사과를 미루면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혀 원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곤 한다.

글로 서로 소통하는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믿는 마음으로 글을 읽는 심독 단계로 가지 않으면 시비곡직거리는 늘 상존한다. 이 문제는 가치관과는 또 다른 문제다. 조금이라도 상대방에게 비난으로 받아들일 말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 되도록 이면 덕담을 나누고 어떤 주제가 자기의 가치관과 충돌한다고 생각될 때도 가치중립적 태도를 두세 번 점검한 다음 상대방의 글을 두세 번 정독하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비판적 댓글을 다는 댓글의 허들을 높이는 것도 해결방법이 되지 않까 생각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햇볕이 나면 땅이 마르고 더욱더 단단히 다져지듯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소통도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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