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1
세상을 살다 보면 어느 곳에서나 참과 거짓이 함께 존재하듯이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긍정과 부정이 상호 교차한다. 이것은 우리 몸이 살아가려면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이 균형을 잡으면서 과립구 우위의 몸이 되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균형을 잡기 위해 임파구 우위의 혈액상태로 돌아가서 이 둘의 균형점에서 건강이 회복되는 이치와 같다.
다름이란 것이 좋다 나쁘다를 결정할 수 없는 이치와 같이 긍정과 부정도 동전의 양면같이 붙어 있고 그 생김새 마냥 적절한 때와 장소에 따라 튀어나와 주면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 짐작된다. 다시 말하면 인생을 사는데 긍정과 부정의 역할은 자동차의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와 같은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한치의 저항도 없이 화목제의 제물이 되는 순한 양의 긍정과 극도의 방어기제를 강화하여 주변에 경쟁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견딜 수 없어 인간 사촌들을 절멸시킨 우리 호모사피엔스의 부정의 역사는 결국 부정에 부정을 곱해 초긍정의 인류문명을 건설한 구동력이 되었음을 애써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긍정은 긍정대로 부정은 부정대로 인류가 지구라는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가꾸어온 꽃밭 같은 것이 아닐까? 그 꽃밭에 우리 마음에 들고 이쁜 알록달록한 화초만 만발할 수도, 비바람이 불어 화려한 꽃잎이 다 떨어지고 줄기도 꺾이다가 뿌리까지 말라갈 때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잡풀, 풀강아지가 근근이 꽃밭의 명맥을 이어가는 역할교대의 대서사가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는 긍정과 부정 같은 것 아닐까 생각된다.
자기만의 배낭을 짊어지고 인생이라는 산을 종주하기도 횡주하기도 하며 종횡무진 좌충우돌하기도 하면서 정상에 올라서서 산바람에 땀을 식히고 자리에 앉아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고 자기가 걸어 올라왔던 굽이 굽이 산길을 내려다보면서 그제야 등짝에 바짝 짊어지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고 배낭을 풀어보면 그 배낭 안에 긍정이 와 부정이가 한데 엉켜 누가 누구인지 가늠도 안 되는 인생의 실타래가 한가득 있음을 그제야 발견한다.
긍정은 긍정대로 부정은 부정대로 나의 생과 사를 책임지고 묵묵히 제 할 바를 충실히 해온 또 다른 나의 자화상과 같은 것이며 이 동반자 없이 어떻게 우리가 인생이라는 험한 산을 올라올 수 있었겠느냐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오직 감사할 따름이다. 긍정은 긍정대로 나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어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면 부정은 부정대로 내가 위험한 길을 갈 때 나를 제어하여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줬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긍정과 부정의 무게를 정확하게 달 수는 없지만 그 역할만은 제대로 알고 산다면 정상에서 땀을 식히고 올라갔던 길을 내려오는 인생의 하산 길에서 올라올 때 실타래처럼 꼬여 있던 긍정과 부정을 조금씩 풀어 하산길에 맞이하는 인생의 문제 앞에 실타래가 술술 풀리는 시원함을 맛보았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