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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랑치고 가재 잡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by 윤해


2024.01.14


화담 서경덕과 황진이의 만남은 어떤 만남이었을까? 남녀 간의 만남, 사제간의 만남 아니면 세상에 태어나 보니 어찌어찌 한 사람은 도학자였고 한 사람은 기생이라는 허울을 쓰고 대면했지만 그 허울이라는 것이 만남을 위한 억겁의 시간에 비하면 모래 한 줌 보다도 가볍다는 것을 서로가 느끼고 알아본 아름다운 인연, 가연(佳緣) 임을 누구보다도 황진이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양손의 떡을 잡고 싶어 한다. 말 타면 경마 잡고 싶어 하고 노름판에서는 꽃놀이 패를 쥐고 싶어 한다. 이 같은 인간의 욕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두 마리 토끼를 쫓아가 두 마리 다 잡을 수 있다는 허황된 자만심을 끝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신은 한쪽 문을 닫으시면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열어 놓으신다'라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원장 수녀가 퇴역대령과 사랑에 빠져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수습수녀 줄리앤드류스에게 해준 말이 우리가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 명대사라고 지금도 기억한다.


우리는 뇌정보 기반의 문명을 이루고 살고 있는 관계로 인지적 구두쇠인 뇌의 속성과 실체를 알아야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1.2~1.4킬로그램에 불과한 뇌, 체중의 2% 남짓한 뇌,

우리의 가용 에너지의 20%를 사용하는 뇌가 마음대로 에너지를 쓰게 놔둔다면 우리의 몸은 아마 견뎌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비록 뇌정보 기반의 문명을 이루며 살고 있다고 해도 인체 가용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대한 머리와 몸의 아슬아슬한 균형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 심신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인지적 구두쇠인 뇌는 한 번에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다고 더 나아가 이렇게 살아야 가성비 높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언제나 속삭인다. 그러나 환상과 상상을 보는 뇌와 달리 현실을 살아야 하는 우리 몸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할 수없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이 뇌정보와 육체정보를 가지고 상상과 현실을 조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뇌가 추구하는 환상과 욕망을 쫓다 보면 우리는 늘 도랑치고 가재 잡고 싶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고 싶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보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다. 인생은 한 번에 한 가지씩 또박또박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가서 차례대로 배열되는 마치 알고리즘에서 명령어가 수행되는 특정순서인 시퀀싱과 같은 개념이다. 즉 모든 단계가 올바른 순서로 표시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것은 오감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몸과 의식을 합해 조화롭게 종합하지 못하면 화담 서경덕이 길 가다 만난 40년 만에 눈 뜬 소경의 당혹감과 같은 기분을 진배없이 느낄 것이다. 즉 "눈이 번쩍 뜨이면서 하늘과 땅, 나무와 동물, 온갖 것들이 마구 보여 정신이 아찔하고 그전에는 걸음을 걸을 때 발에 의지하여 조심조심하였고, 물건을 잡을 때는 손에 의지하여 거친 지 매끄러운지를 알았고, 누구를 알 때는 목소리에 의지하여 걸걸한지 청명한지 구분했고, 먹을지 말지는 코의 냄새에 의지하여 쓴맛 단맛을 알았는데, 이제, 그만 눈이 번쩍 뜨이면서 이것들이 서로 마구 엉켜 망연자실 그만 살던 집도 못 찼습죠”라는 40년 만의 눈 뜬 소경의 푸념에 “도로 눈을 감고, 네 지팡이에 의지하면 될 일 아니냐?”라고 일갈하는 화담의 도학자 다운 풍모를 보고 황진이가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었겠나?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화담 서경덕의 도인의 풍모도 따져보면 도랑치고 가재 잡을 수 없다는 깨달음 하나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40년 만에 눈 뜬 소경에게 도로 지팡이를 잡으라고 말하며 휑하니 사라지는 화담의 모습에서 도는 양손의 떡을 잡는 것이 아니라 떡을 맛보려면 반드시 한 손에 떡은 내려놓고 두 손으로 떡을 먹어야 떡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평범하면서도 욕심을 내려놓아야 알 수 있는 진리 앞에 화담과 황진이가 느꼈을 아름다운 인연의 충만함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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