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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아이쇼핑이 아니며 인터넷 서핑도 아니다

by 윤해



2024.01.22

옳은 말을 기분 좋게 하라, 기분이 태도를 결정하지 마라.

우리는 관계를 이야기할 때 강력한 매개체로서 말의 힘을 절대적으로 여긴다. 꿀 먹은 벙어리라던가, 제발 속시원히 말 한번 해보자라고 하면서 심지어 술까지 듬뿍 먹이면서 취중 실언을 취중 진담으로 여기며 자기가 믿고 싶은데로 믿으며 마치 자기의 속마음은 꽁꽁 숨긴 채 상대방의 속마음을 엿보고 확인하고 싶은 심리를 통해 사회 관계망이 구축되었고 이 화자와 청자 간의 밀당과 역할 바꿈의 역사가 어쩌면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서로 얼굴을 맞대는 대화를 통한 관계들이 온라인 도구를 통한 대화나 댓글로 진보하면서 신종 엿보기, 즉 새로운 관음증이 익명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SNS 세상에 널리 만연해 있다. 그러면 이러한 온라인 비대면상에서 펼쳐지는 익명의 관계에서 우리는 무엇에 가슴 뿌듯해하고 무엇에 가슴 서늘해하는 것일까?

관계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관계를 맺는 첫 단계는 단연코 서로 주고받는 행위다. 주고받는 것이 정량화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알쏭달쏭하면서 실체가 좀체 떠오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인지에 따라 명확한 관계가 정립되기도 하고 애매모호한 관계가 정립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관계망이라고 하는 촘촘한 네트워킹된 그물망을 이리저리 넘나 들면서 일희 일비하기도 하고 마음을 끓이기도 하고 마음을 잡기도 내어주기도 하면서 한 생을 살아가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서도 무게비례의 법칙에 의해 정량화할 수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이 적당히 버무려진 체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관계가 만든 세상은 굴러가는 것이다. 그러나 치고 빠지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무게비례라고 하는 관계의 금과옥조가 심하게 훼손당하기 쉽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 이리저리 아이쇼핑 하듯이 옮겨 다니는 환경하에서 파도를 타듯이 알맹이만 취하고 껍데기는 버리는 웹서핑 문화에 익숙하다 보면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부대끼는 현실세상에서도 인터넷 세상에서 아이쇼핑하고 서핑하던 관성이 습관이 되어 두텁고 축적된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곰삭은 묵은지 뚝배기 맛을 잃어버리기 쉽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 처럼 관계의 강력한 매개체인 말을 정량화시킨 속담도 있지만 한마디 말에 정 난다와 같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추상적인 정으로 치환되는 경우를 우리는 더욱더 좋아한다. 저마다 바쁘고 삭막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정이라는 가슴을 시원하게 하기도, 서늘하게도 더 나아가 가슴을 따뜻하게 하기도 하는 말 한마디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수많은 단어를 써 보지만 오리무중에 갇힌 따뜻한 말 한마디를 오늘도 파랑새처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초상 아닐까?

인생 최고의 자격증은 안동 길안면 만휴정(晩休亭) 주렴에 ‘吾家無寶物寶物惟淸白(오 가무보물보물유청백), 즉 안동 김 씨 묵계파의 청렴결백이 아니며 나아가 이스라엘에 있는 후츠파(chutzpah)라는 독특한 문화가 이야기하는 ‘주제넘은, 뻔뻔스러운, 철면피, 놀라운 용기, 오만’이라는 뜻과 같이 '침 튀도록 이야기하라'라고 하는 냉철한 이성이 지배하는 가슴 서늘한 말들이 아니고 공감하고 정내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최고의 인생자격증은 아닐는지 반성에 반성을 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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