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월지지(指月之指) , 지월지월((指月之月)

by 윤해



2024.03.10

지월지지(指月之指),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데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에서 인간이 만든 세상의 불확실성과 불확정성을 절감한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의 숫자만큼 수많은 변수와 확률로 이 지구에 오게 된 우리들은 나름의 규칙과 통제를 바탕으로 인간 중심의 질서를 세워 나갔고 그 질서를 세워나가는 과정자체가 워낙 갈지(之) 자 행보를 보인 까닭에 어디에다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모르는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인 존재다.

변수가 상수인 세상에서 순간을 잘라 고정을 시킬 수 없으므로 늘 우리는 무언가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잡은 대상이 시야에서 허무하게 사라지는 경험을 짧은 한 생을 살면서도 수도 없이 하고 사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규칙과 법칙을 만들고 그 만들어진 법칙을 가지고 이론을 세우며 이론과 실재를 비교하기 위해 실험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고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 하면서 이해를 통해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안갖 힘을 쏟는 것이다.

이해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고 사랑은 변심의 또 다른 이름이므로 마음의 변화, 즉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 만이 변치 않는 진리라는 데 이르면 변화 자체가 인생이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변화하는 데 조금의 주저도 필요치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규칙과 법칙을 만들어 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 과거에 만들어낸 규칙과 법칙에 얽매여 꼼짝달싹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또다시 변화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임을 절감한다.

처지와 위치가 다른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섭리마저도 흔들리고 변하는데 어떤 사건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인간의 가치관과 보는 시각이 다른 것, 즉 지월지지(指月之指)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며 생각을 모으고 가치관을 일치시키는 모든 행동이 폭력적이고 폭압적 세뇌나 강압이 가해진 결과물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 세상, 나라와 문화는 달라도 일관되게 행해지는 섭리는 가치관을 통일시키기 위해 일어나는 갖가지 국가적 차원의 압력은 개인의 지월지지(指月之指 )를 이해하지 못해 일어나는 폐해요 폐단인 것이다.

세상이 진보한다는 것은 만물이 합쳤다가 흩어지는 것과 같다. 합칠 때에는 생각을 하나로 모으고 대동단결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합목적적인 이상에 저당 잡히고 집단의 힘을 통해 세상의 질서를 뒤엎는 것이라면 흩어질 때는 흩어지는 이유가 백인백색과 같이 갖가지 이유와 가치관에 따른 개성이 분출되면서 지월지지(指月之指)하고 그 지월지지(指月之指)가 혜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각이 다른 가치관을 가진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는 개성의 시대가 바로 우리 앞으로 다가온 것이며 우리가 그토록 구현하고자 하는 자유민주주의가 활짝 피어나는 시대이기도 한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농업혁명 이후 1만 년이 지나고 세상이 만든 문명이라는 창은 깨어지고 수리하고를 거듭한 끝에 브로컨 윈도어(broken window)가 되어 세상을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허황하게 하지만 세상의 깨어진 유리창 사이로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 만든 유리창은 건재하게 살아남아 세상이라는 조직이 만든 broken window를 수리하는 문명의 역설을 오늘도 내일도 끝없이 하는 것을 인생이라 부른다면 세상을 지월지지(指月之指) 하지 않고 지월지월(指月之月)하는 것만이 의미를 먹고사는 개성을 가진 우리가 해야 할 일인지 의심해 본다.



지월지지(指月之指),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데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에서 인간이 만든 세상의 불확실성과 불확정성을 절감한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의 숫자만큼 수많은 변수와 확률로 이 지구에 오게 된 우리들은 나름의 규칙과 통제를 바탕으로 인간 중심의 질서를 세워 나갔고 그 질서를 세워나가는 과정자체가 워낙 갈지(之) 자 행보를 보인 까닭에 어디에다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모르는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인 존재다.

변수가 상수인 세상에서 순간을 잘라 고정을 시킬 수 없으므로 늘 우리는 무언가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잡은 대상이 시야에서 허무하게 사라지는 경험을 짧은 한 생을 살면서도 수도 없이 하고 사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규칙과 법칙을 만들고 그 만들어진 법칙을 가지고 이론을 세우며 이론과 실재를 비교하기 위해 실험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고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 하면서 이해를 통해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안갖 힘을 쏟는 것이다.

이해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고 사랑은 변심의 또 다른 이름이므로 마음의 변화, 즉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 만이 변치 않는 진리라는 데 이르면 변화 자체가 인생이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변화하는 데 조금의 주저도 필요치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규칙과 법칙을 만들어 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 과거에 만들어낸 규칙과 법칙에 얽매여 꼼짝달싹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또다시 변화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임을 절감한다.

처지와 위치가 다른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섭리마저도 흔들리고 변하는데 어떤 사건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인간의 가치관과 보는 시각이 다른 것, 즉 지월지지(指月之指)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며 생각을 모으고 가치관을 일치시키는 모든 행동이 폭력적이고 폭압적 세뇌나 강압이 가해진 결과물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 세상, 나라와 문화는 달라도 일관되게 행해지는 섭리는 가치관을 통일시키기 위해 일어나는 갖가지 국가적 차원의 압력은 개인의 지월지지(指月之指 )를 이해하지 못해 일어나는 폐해요 폐단인 것이다.

세상이 진보한다는 것은 만물이 합쳤다가 흩어지는 것과 같다. 합칠 때에는 생각을 하나로 모으고 대동단결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합목적적인 이상에 저당 잡히고 집단의 힘을 통해 세상의 질서를 뒤엎는 것이라면 흩어질 때는 흩어지는 이유가 백인백색과 같이 갖가지 이유와 가치관에 따른 개성이 분출되면서 지월지지(指月之指)하고 그 지월지지(指月之指)가 혜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각이 다른 가치관을 가진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는 개성의 시대가 바로 우리 앞으로 다가온 것이며 우리가 그토록 구현하고자 하는 자유민주주의가 활짝 피어나는 시대이기도 한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농업혁명 이후 1만 년이 지나고 세상이 만든 문명이라는 창은 깨어지고 수리하고를 거듭한 끝에 브로컨 윈도어(broken window)가 되어 세상을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허황하게 하지만 세상의 깨어진 유리창 사이로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 만든 유리창은 건재하게 살아남아 세상이라는 조직이 만든 broken window를 수리하는 문명의 역설을 오늘도 내일도 끝없이 하는 것을 인생이라 부른다면 세상을 지월지지(指月之指) 하지 않고 지월지월(指月之月)하는 것만이 의미를 먹고사는 개성을 가진 우리가 해야 할 일인지 의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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