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착함, 세상의 선(善)함

by 윤해


2024.03.13


착하다는 말이야말로 세상을 살면서 우리를 가장 햇깔리게 하는 말이다. 무엇이 착하고 무엇이 착하지 않은 것일까?


말로 착함을 풀어보면 착각이 떠오르고 글로 착함을 이야기해보면 착할 선(善) 자가 연상된다.


착함이라는 의미가 발음으로 다가오면 착각한다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착함이 주는 울림이 40억 년의 생명의 역사에서 있을 수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진화생물학에서 생명이란 포식과 피식 사이의 이진법적인 GO & STOP의 무한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포식과 피식, 즉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에서 조금의 방심이나 착각은 그 개별 생명체에게는 바로 죽음과 사멸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생명체의 역사에서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거나 할 수 없음에도 하는 개별적인 착각은 일어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이다.


이처럼 착각이 착함으로 연결되고 말이 글이 되어 착할 선(善)으로 바뀌면서 입 구(口) 위에 제단을 쌓고 희생양을 올려놓은 모습에서 착함이라는 생명계에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역설을 글자로 만든 문명세계에서 형상화하고 구체화한 것이 착할 선(善)이라는 개념이 아닐까?


생명계의 역사에서 포식과 피식을 착각한 대사건이 해당계 세포가 미토콘트리아를 먹이로 착각하여 세포 내로 포식하고 피식된 미토콘트리아는 세포 내에서 살아남아 공생하게 되면서 에너지 증폭을 3~4배 하면서 순발력이 뛰어난 해당계와 에너지를 32배로 증폭시키면서 지구력이 뛰어난 미토콘트리아계를 동시에 가진, 듀얼 엔진 시스템을 장착하여 착각에 이은 착함으로써 세포의 하부구조, 즉 토대를 완성한 세포는 결과적으로 생명계의 대폭발을 가져왔고 그 결과 불로불사의 혐기성 해당계 세포가 산소를 사용하는 호기성 미토콘트리아계와 공생함으로써 생명계는 불로불사를 포기하고 생식을 통해 자손을 이어가는 착각에 의한 착함을 실현시키며 진화라는 대여정을 이어갔다고 해석하는 것이 나만의 착각일까? 궁금해진다.


이처럼 해당계와 미토콘트리아계의 착각에 의한 착함으로 유구한 생명계의 하부구조를 구축한 우리가 말과 글을 가지고 쌓은 문명이라는 생명계의 역사와 비교해 보면 찰나적 기간 동안 착함을 보고 관찰하고 데이터를 축적해 보았지만 착함은 희생양을 제단에 위에 올려 입속에 넣는 착할 선(善) 자 수준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웠으리라고 이해하면서 한 생이라는 극히 짧은 기간에 인간의 관점에서 파악한 착함의 개념은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 그리고 고자(告子)의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이 치열하게 논쟁하는 불가지 영역에서 끊임없이 맴돌면서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생명계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생명의 하부구조를 착각에 기인한 착함으로 생명의 토대를 가진 우리가 문명을 일으켜 짧은 시간 글로 만든 착할 선()에 매몰되어 인간 세상에서 착함을 구현한다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생명계의 착함과 비교할 때 하부구조가 빈약하고 토대가 취약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자백가들이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을 주장한들 인간 세상에 혼란과 햇깔림을 더하는 설에 불과할 뿐이다.


일상이 도(道)라는 말이 있다. 중국 명(明) 시대 왕간(王艮)의 “백성일용즉도(百姓日用卽道)”라는 말과 맥을 같이한다. 그렇다. 도(道)란 산속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침에 잠을 깨어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의 일상 속에 도(道)가 있는 것이다.


주기도문에서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를 반복하고 마태복음이나 신명기에서 일용할 양식이라는 것은 단순히 일차원적인 먹거리의 의미를 넘어선 구원의 개념으로 등장한다.


생명의 하부구조가 해당계와 미토콘트리아계가 듀얼 엔진시스템으로 작동하듯이 세상의 토대도 흙을 밟고 사는 이상 착함은 희생양을 입에 넣고 살아가는 백성일용즉도(百姓日用卽道), 즉 일용할 양식에 의해 구원받는 수준과 단계에 있음을 절감한다면 더 이상 아름다운 말로 혹세무민 하는 성선설을 악용하는 모리배보다는 욕을 좀 얻어먹더라도 묵묵히 백성일용즉도(百姓日用卽道)를 실천하여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국가의 하부구조를 단단히 구축했던 히든 히어로(hidden hero)의 착함이 우리가 착하게 살아가는 이유라고 한다면 그것을 지금 누리는 우리는 끝없이 누군가의 희생양에 의존하는 착할 선(善)에서 탈피하여 생명의 유구한 착함에 눈을 떠서 서로가 공생하는 착함에 귀 기울이고 행동해야만 지금의 착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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