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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돌연변이가 주도한다

by 윤해



2023.03.26

생명진화의 역사에서는 생존하기 위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무슨 행동을 하여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라고 하는 생태학 제1법칙과 같이 사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분투노력하는 생명의 안간힘은 처절하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하다.

생명의 특징은 항상성이다. 심장이 규칙적으로 박동해야 일정한 양으로 규칙적으로 동맥을 통해 모세혈관까지 신선한 피를 보내고 신선한 피가 세포말단까지 산소와 영양을 전달하고 다시금 모세혈관을 통해 정맥을 타고 심장으로 돌아와서 다시 신선한 피로 교체되어 죽을 때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되어야 우리는 생존할 수가 있다.

그러나 심장박동이라는 항성성마저도 극악한 환경 속에 놓인 생명에게는 살기 위해서 천천히 뛰는 서맥이 되면서 얼어붙기(freezing)도 하고 긴박한 순간이 오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되어 몸으로 하여금 최대의 에너지를 낼 수 있게끔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정지 도피를 기전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항상성은 인류가 발명한 어떤 초정밀 기기, 예를 들면 휴머노이드 로봇 챗GPT 와 비교가 불가하며 경이롭기까지 하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는 천 번 잘하다가 한번 실수한 것이 하필이면 나무 밑에서 기다리던 배고픈 맹수 앞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 원숭이는 천 번을 나무를 잘 타다가 나무에서 한 번 떨어진 실수로 포식자의 한 끼 식사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 부처의 중도(中道)와 공자의 중용(中庸), 노자의 무위(無爲)도 따지고 보면 양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말이지 중간에 서서 움직이지 말고 하지도 말며 복지부동하라는 말이 아니다.

인간 세상에서 가정을 기반으로 한 수학적 평균은 존재할 수 있어도 변화와 일탈 그리고 돌연변이가 난무한 생태계에서 중도와 중용, 무위라는 말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중에 중심을 잡고 양극단으로 끌려가지 않는 것이라 짐작되며 익숙하여 편해져서 한 곳에서 터를 잡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때가 되면 허물을 벗는 애벌레 같이 우리의 몸도 백일만 지나면 겉의 세포가 바뀌고 열 달만 지나면 몸속 장기까지 다이내믹하게 세포교체가 일어나는데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비슷하다는 착각을 하는 것은 뇌정보 기반의 세상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손자병법 제6,7편 「허실 편」에 나오는 득실지계의 말미에 기전승불복(其戰勝不復), 이응형 어무고(而應形於無窮)과 같은 착각을 수시로 하고 살면서 과거의 성공만 믿고 그 방법만을 쭉 밀고 나가는 관성대로 살다가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변한 것도 모르고 나무만 타다가 사라져 간 원숭이 무리들을 뒤로하고 과감하게 나무에서 내려와 사바나를 거쳐 지구 끝까지 걸어가서 생존을 넘어 지구 최상위 포식자가 된 호모사피엔스가 이전의 성공에 도취되어 변화를 게을리한다면 우리 인류는 머지않아 세상이라는 숲에 갇혀 나무를 타는 원숭이 같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천려일실(千慮一失)의 실수로 절멸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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