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7
21세기 대명천지를 살고 있고 가는 곳마다 cc tv가 도배를 하다시피 전국 방방곡곡에 깔려 있고 아파서 가는 의료기관을 찾아가면 묻고 진찰하는 의사의 문진과 촉진은 사라지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짜고짜 방사선실로 데려가 X-ray, CT를 연신 찍어대니 여기가 사진관인지 병원인지 당최 했깔린다.
이에 더해 온 국민들 손에 쥐어준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별별 기능들, 즉 내비 카메라 인터넷...... 등등등
이렇게 많은 이기와 장비가 있는데 왜 우리는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다니는 걸까?
먼저 우리는 자연에서 나와 세상을 살고 있다는 기본적 인식을 한순간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자연의 길은 본능을 바탕으로 수십억 년 생명계의 역사가 고스란히 우리 세포 하나하나 마다 해인처럼 아로새겨져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이성만이 아닌 본능적 감성으로 인도하면서 중차대한 판단을 할 때 천려일실의 오판을 방지하도록 수많은 안전장치를 이미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말을 글로 만든 문자와 같은 연역적 인공지능의 개발로 인해 새로운 인지혁명의 장을 연 우리 인류가 열어젖힌 문자로 밝힌 문명세상은 개발자나 설계자가 미리 만든 소프트웨어라는 길을 따라 작동하므로 그 방식이 연역적인 것이다. 즉 문자로 만든 지식과 이념은 그것을 만든 개발자나 설계자의 주관이 정한 한도 내에서 이러한 연역적 인공지능이 가동되는 치명적 결함이 문명이 만든 세상 안에서는 언제든지 작동될 수 있음을 세상을 사는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처럼 지식과 이념은 일견 치밀한 논리와 뼈대를 가지고 가지를 치고 살을 붙여 온갖 아름다운 말과 글로 이상향을 노래하고 세상 속의 인간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희망으로 가득 차게 했지만 그 불씨가 꺼지고 나면 절망과 회한 그리고 참담한 비극적 결과가 우리를 아연하게 한다.
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문자 주판 계산기 컴퓨터 들은 인간의 지능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보다 정확하고, 효율적이며, 빠르게 수행하는 넓은 의미의 AI이다.
이에 비해 알파고를 시작으로 딥러닝머신 방식의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하는 인간의 뇌를 닮은 귀납적 방식의 AI라고 할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인공지능은 뇌정보 기반의 판단도구일 뿐이지 수십억 년 생명계를 이어온 유전정보적 판단을 AI에게 물어보면 말을 못 하거나 뇌정보 영역에서 구축된 지식을 학습한 대답밖에는 내어 놓을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한다.
지혜를 기반으로 한 자연의 길과 지식을 기초로 한 세상의 길은 이렇게 엄연히 다른 갈래 길이며 지식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세상의 길을 가다가 길이 막히면 지식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지식의 때를 벗기고 자연이라는 지혜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걸어가야 하는 자연의 길과 인간이 스스로 만든 세상의 길은 비록 갈랫길 같이 보여도 마치 우리의 유전자 지도의 내비게이션과 같은 DNA 이중나선 구조와 같이 중첩되어 있다.
언제라도 인간이 만든 지식의 길이 막히면 바로 옆에 중첩되어 꼬여있는 사람이 가는 자연의 길 지혜의 보고로 환승하면 된다.
다만 자연의 길로 바꿔 타는 정거장을 통과하는 승차권을 발권받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세상을 살면서 욕심으로 쌓아 올린 지식의 짐을 다 버리고 이념의 때까지 말끔히 벗기고 짐도 때도 없는 순수한 사람만이 정거장을 통과하여 지혜로 가득한 자연의 길로 환승할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