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위선은 주로 어떤 인간이 떨까? 지킬박사와 하이드 마냥 한 인간 속에 두 가지 인격체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인간의 생존을 위해 밀고 당기며 어르고 달래는 사회적 기술을 떠나 인간의 생리 자체가 이성과 감정,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그리고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세포단위의 생명활동에 의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인간이 세상을 만들어 사는 어느 곳에서나 위선과 거짓 사기가 횡행(橫行)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해 진실이 드러나고 위선자들은 적절한 죗값을 받는다는 것이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되기 위한 필수과제다.
어쩌면 동 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의 발전은 위선의 껍데기를 벗기고 진실의 알맹이를 채우는 지난한 작업의 결실인지도 모른다.
특히 5% 양반 지배계층이 60% 이상 되는 노비들의 노동력에 의해 돌아가던 왕조시대 신분제 사회를 살았던 우리가 거쳐왔던 조선의 유교적 뿌리를 생각해 보면, 연암의 호질문이라는 작품에서 보듯이 양반 지배계층의 위선은 가히 예술적이라 하겠다.
위선은 "Honesty is the best policy"라는 서양 격언과 대척점에 서 있는 거짓의 산물이며 거짓을 공동체 소외계층의 분노를 악용하고 역이용하여 억지논리를 개발하고 끝없이 반복 재생하는 가공과정을 거쳐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예술적 단계까지 쭉 나아가다 보면 위선이라는 빤스 정도가 아니라 내로남불이라는 산성을 쌓고 공동체의 피와 땀을 독식하다가 궁극적으로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세련된 소시오 패스들의 가면이 바로 위선인 것이다.
생명의 기본은 주고받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다. 이 같은 이치는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계급이 분화되고 점점 더 놀고먹는 인간이 많아지면서 통치이념이라고 하는 위선의 경전이 시작되었고 이 경전은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반동으로 엎어질 때까지 위선을 예술이라는 돌로 성을 쌓아 그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내로남불 산성을 기어이 구축하고 그 성안에서 천세 만세를 누리려고 하는 것이다.
절대로 깨질 것 같지 않았던 조선의 양반제 신분사회도 경술국치 망국의 와중에서 일제에 의해 얼떨결에 노비해방이 되었고 우리는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사회로 나아가게 되었다.
해방정국의 치열했던 이념논쟁의 종지부를 찍고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가 이식되었고 북쪽은 공산주의 일당독재를 거쳐 김일성 왕조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그 후 대한민국은 산업화를 거쳐 국시인 자유민주주의를 기필코 이 땅에 자리 잡게 하였고 북쪽은 북조선이라는 국명과 같이 김일성 3대 세습을 기어이 완성하여 도로 조선이 되는 역사의 평행이론을 시연한 것이다.
역사를 잊어버리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만큼이나 중요한 말은 역사는 이처럼 시대가 흘러가도 과거의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신분제에서 해방되어 근대국가를 거쳐 현대국가로 달려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과거 왕조시대 계급사회에서나 볼성싶은 장면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며 활개 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남의 희생을 딛고 일어나 완장을 차고 입으로는 한 없이 고상한 말을 내어 놓으면서 뒤로는 온갖 추잡한 부정과 협잡 그리고 위장을 눈 깜짝하지 않고 저지르는 위선자들을 넘어 범법자들이 활개 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우리 사회가 퇴행하여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 지울 수없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습은 마치 그동안 우리가 죽을힘을 다해 달려왔던 근대화의 업적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과거사 회귀세력들이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진실의 알맹이를 외면하고 왕조시대 양반의 놀고먹는 향수를 그리워하며 위선의 껍데기로 덧대어 포장하여 세상의 희생자들을 제물 삼아 국가를 퇴행시켜 평평하게 나라시 하려는 속셈을 미사여구와 위선을 버무린 예술로 혹세무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