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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행실천(躬行實踐)하는 그대를 기다리며

by 윤해


2024.03.29


궁행실천(躬行實踐)이 되었던 실천궁행(實踐躬行)이 되었던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휘발성 강한 말이나, 말보다는 좀 더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글이나, 궁극적으로는 모두 궁행(躬行) 하기 위함이며 실제적으로도 모두 실천(實踐)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먼저 알려고 노력하고 그다음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행동하는 단계를 밟는다. 이 순서가 뒤 바뀌면 인간 세상은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고 질서가 무너지는 대혼란과 마주친다.


자애(慈愛)가 있다면 용감해지며, 검소(儉素)함이 있다면 베풀 수 있고, 겸양(謙讓)이 있다면 인재 중 으뜸이 될 수 있다는 자애(慈愛)와 검소(儉素), 겸양(謙讓)은 무슨 뜻인가?


바로 실천궁행(實踐躬行)을 말 그대로 실천하기 위한 행동강령이 자애(慈愛)와 검소(儉素), 겸양(謙讓)이라 할 수 있다.


활에 화살을 걸어 목표물을 조준하여 날려야 명중이 되든지 말든지 하듯이 우리도 어떤 행동을 통해 열매를 따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한 몸을 활에 걸어 화살같이 쏘아 날리는 궁행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애하여 용감해지고, 검소하여 베풀 수 있으며 겸양을 통하여 제대로 온몸을 공동체를 위해 투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애롭지 않으면 비겁하여 나아가야 할 때 물러가고 검소하지 않으면 질러야 할 때 주저주저하고 겸양하지 않으면 주변의 평가에 연연하여 으뜸이 되지 못하고 버금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에서 나와 문명을 이루고 살지만 순환을 통해 영속한다는 대자연의 섭리는 거스를 수없다. 즉 비록 문명이 말과 글로 이루어진 일종의 가상세계라 할지라도 언어를 매개로 구축한 뇌정보가 우리의 브레인 안에서만 맴돌았다면 우리의 문명은 한치도 나아갈 수없었고 문명의 진보는 뇌정보를 바탕으로 육체정보가 기능하여 유전정보까지 한 바퀴 돌리는 머리와 몸 그리고 마음까지 함께 돌아가는 자연과 문명의 순환이 계속되는 실천궁행의 섭리가 작동해야만 문명이 만든 인간 세상도 돌아가는 것이다.


완벽(完璧)을 뜻하는 화씨지벽(和氏之璧)의 옥구슬 이야기도 옥석을 구분하지 못하는 왕에게 "저는 두 발이 잘린 것을 원망하여 슬피 우는 것이 아니라, 제 옥을 돌이라 하고, 정직한 나를 거짓말쟁이라 한 것에 분노하여 울고 있습니다”라는 화씨(和氏)의 말에 비추어 보면 옥석을 구분하는 안목이 군주가 가져야 할 덕목의 시작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주는 투표권을 가진 국민이다. 화씨지벽(和氏之璧)의 옥구슬로 만든 천자의 옥쇄는 투표장에 들어가 기표를 위해 집어 들어야 할 투표지에 찍는 도장으로 환생했다. 그 붉은 인장이 비록 천자의 옥쇄가 아니다 하더라도 그 투표지 한 장 한 장의 무게만큼은 천자의 결재서류를 능가한다.


선거라는 캠페인을 통해 은근설쩍 사천을 통해 무임승차 하여 공동체를 와해하려는 세력의 준동과 발호가 심각하다. 선거가 끝나고 난 뒤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왕을 만나 두발이 잘리고 피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면 함부로 지르는 선량들의 공약(公約)이 공수표 같은 공약(空約)이 되어 궁행실천하지 못하는 선거판의 빌런들을 솎아내고 옥석을 가리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는 화씨지벽(和氏之璧)의 발목이 잘린 화씨(和氏)보다 더해 발목에 이어 손목까지 잘리는 완벽하게 순환이 차단되는 불통의 사회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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