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나마나한 말이 법문이 되고 세상에 널리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달마가 창건한 선종의 역사를 송나라 때 정리한 책인 '오등회원(五燈會元) ‘'이 원본이고 우리는 성철스님을 통해 듣고 아는 법문이다.
이 말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나 산은 부동지의 의미의 공간, 물은 흘러가는 의미의 시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이라는 공간 시간 인간이라는 삼간을 이야기하고 그 세 가지 사이와 틈에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본질은 항상 물질의 최소단위다. 물리의 세계인 미시계에서 최소단위는 원자핵을 도는 전자의 불규칙적인 떨림만 존재한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본질을 파고들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수긍하고 우리는 거시계인 세상을 창조하였고 그 창조된 세상을 일군 일등공신은 도구의 혁명이다.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과거사를 구분할 때 역사시대는 물론이고 선사시대까지도 시대를 구분하는 잣대가 도구이다. 즉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등 시대구분이 도구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는 의미는 이미 문명의 주인공인 인간이라는 본질이 도구라는 수단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뚜렷한 방증이다.
어쩌면 우리 인류문명의 진보는 도구와 수단의 발전과정과 정확히 궤를 같이하고 있다. 앞에서 열거한 석기 청동기 철기 같은 하드웨어적인 도구뿐만 아니라 말과 글 그리고 생각과 사상 철학과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도구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도구가 도구를 개발하고 수단이 수단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류는 진화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도구와 공진화하면서 문명을 일구었다. 처음에는 도구를 만든 창조자로서 다음에는 도구와 함께하는 동반자로서 그리고 그다음에는 도구에 의해 지배당하는 피지배자로서의 길을 갈 것이 예정되어 있다. 이 운명적인 흐름을 극복해야만 우리 인류의 활로가 열릴 것이다.
이와 같이 본말이 전도되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도구로부터 벗어나서 산다는 생각은 단순히 야만의 자연이나 원시의 문명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도구의 본질을 깨닫고 도구의 창조자이며 운용자이고 무엇보다도 도구의 마스터, 즉 주인으로서 인간의 위치를 공고히 해야만 Chat GPT와 같은 귀여운 손자를 무릎에 올려놓고 오냐오냐 하다 보면 한마디 질문도 못하고 어느 틈에 순식간에 할아비 같은 우리 수염을 확 채어갈지도 모르겠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이 인간은 인간이고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