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5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인가?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인가? 아니면 남녀가 서로 하기 나름인가?
주고받는 생명의 역사에서 유성생식은 불로불사를 포기한 생명에게는 운명의 장난을 넘어 절대적 명령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입에 넣고 소화시키고 에너지를 내야 하는 포식과 피식의 숨바꼭질에서 포식은 생명을 죽여 입에 넣는 것이라면 피식은 자기가 죽어 포식자의 먹이가 되는 찰나적 선택이 생사를 결정하고, 그 선택에서 살아남은 개체도 생식을 통한 번식을 하지 못하면 대를 이어 살아남는 생존게임에서 탈락하여 사멸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러한 운명의 장난 앞에서 암수와 자웅과 남녀의 드라마틱한 전개가 어쩌면 생명계의 운명과 숙명을 좌우하는 알파요 오메가인 것이다.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말하듯이 남자와 여자는 차원이 다른 것이 아니라 출발한 행성자체가 다르다.
인정받고 싶은 남자와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여자 간의 끝도 없는 밀당과 줄 달리기는 인정과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만큼이나 추상적이며 난해하다.
이 난수표 같은 남녀 간의 암호를 해석할 수 있는 지력이 있는 남자도 없고 수수께끼 같은 알쏭달쏭한 암호를 보내고 남자가 풀 때까지 기다려 줄 끈질긴 여자도 존재하지 않는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만날 확률은 칠월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타고 만날 확률보다도 희박해 보인다.
이러한 겸손한 출발에서 남녀를 바라보면 지구에 와서 남녀가 서로 만나 순탄하게 아무 일 없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다.
데카르트는 '코기토 에르고 솜(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했으며, 소크라테스는 “반성 없는 삶이란 살 가치가 없다”라고 했지만, 데카르트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소크라테스가 무엇을 반성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악처의 대명사 크산티페에게 물벼락을 뒤집어쓰면서 천둥이 치고 난 뒤에는 항상 장대비가 오는 법이지 하면서 아고라에서 너스래를 떨던 테스형은 크산티페가 암호같이 쏟아내는 독설을 하나도 알지 못하여 아고라에서 무지의 지를 설파하면서 반성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본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 마저 코기토 에르고 솜(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통해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모르나 그 역시 평생 유모라는 여자 덕분에 살았고 하녀를 존중하여 헬레나라는 하녀와 동거하여 딸 프란시느를 가진 딸 바보였으며 프란시느가 5살 때 선홍열로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괴로워하다가 의학을 포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화성에서 온 남자가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이해하는 것은 테스형도 데카르트도 할 수 없는 난이도인 것 같다. 너무 알려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사랑하는 것만이 남녀가 서로 하기 나름을 실천하는 첩경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