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5
나가 살아가는 인생이나 나라가 발전하여 나아가는 도정이나 우여곡절과 시행착오와 산절수절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러한 고비와 마디를 슬기롭게 넘어서는 사람이나 나라에게는 생존과 성장을 통하여 번성과 번영을 약속하고 그 고비와 마디에서 꺾이고 좌절하는 인간과 국가에게는 절멸과 패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과 사 번영과 패망은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라진다. 위기와 기회가 한 몸통으로 달려오는 자연이나 세상의 리듬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생사의 기로를 좌우하고 번영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무대를 살아갈 때 피할 수없이 다가오는 리듬이 산절수절(山節水節)이라는 산 넘고 물 건너는 경우를 당하기 마련이다. 인연에 따라 흐르는 개인의 리듬은 워낙 다양하므로 어떻게 이야기하기가 어렵겠지만 나라는 개인이 모여 만든 나라라고 하는 공동체의 흥망성쇠는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는 비교적 미래를 예측하기가 용이한 분야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러한 공동체의 흥망성쇠에 따라 워낙 나라는 개인의 삶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이 공동체의 흥망성쇠는 역사라는 기록을 통해 세상의 원리가 정해져 있고 이 원리는 자연의 섭리와도 일치하니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원리와 자연의 섭리가 만나는 몇 안 되는 희귀한 리듬의 중첩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뚜렷한 원리와 섭리가 막상 산절수절(山節水節)이라는 위기를 만나면 나라는 개인의 욕심과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달라라고 호도하는 모리배의 속삭임에 넘어가 눈 뜬 봉사가 되어 나라라고 하는 공동체가 무슨 귀신이 씌었는지 순식간에 한풀이 마당과 굿판이 되어 마녀사냥도 부족하여 시대의 영웅을 십자가에 매달거나 부관참시도 서슴지 않는 것이 또한 매번 일어나는 역사의 평행이론이자 슬픈 숙명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의 평행이론은 한발 더 나아가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세상의 온갖 악덕으로 버무려진 빌런들에게 환호하는 서글픈 군중들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켜 공동체의 기회를 위기로 전락시키는 마술을 기어이 실현시키는 것이다.
우리 자신들 하나하나가 아득한 우주로부터 날아온 자각 만이라도 하고 있다면 다시 저 머나먼 우주의 티끌과 먼지가 되어 돌아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므로 나나 나라나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우리 생체가 쉴 새 없이 세포분열을 통해 죽은 세포를 털어내어야 그 자리를 새로운 세포가 자리 잡고 살아갈 수 있듯이 세상도 기존의 질서를 끊임없이 털어내고 새로운 질서와 뉴노멀이 자리 잡는 도강침주(渡江沈舟)의 건전한 기풍이 없다면 세상은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언제나 뉴노멀을 가장하여 공동체나 세포를 좀먹는 빌런들이나 암세포들이 도강침주를 가장하여 멀쩡한 배를 침몰시키고 배 밑바닥이 숭숭 뚫린 배로 갈아타려는 온갖 술수와 선동이 획책되는 지점을 맞이하는데 바로 이 지점이 산절수절(山節水節)에서도 그렇게 넘기 어렵다는 수절(水節)의 지점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산절(山節)은 나의 힘과 노력으로 넘을 수 있으나 수절(水節)은 올라타는 배의 덕택(德澤)과 그 배를 모는 뱃사공의 덕분(德分)이 합쳐진 덕택(德澤)과 덕분(德分)을 입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운칠복삼(運七福三)의 영역이며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카오스(chaos)의 세상이다.
기도하고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만이 혼돈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여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