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청나라 말기 이종오가 저술한 '후흑학'에서 후흑은 면후(두꺼운 얼굴), 심흑(시커먼 속마음)을 합한 말이며 핵심의미는 그때 시대상황이 서양열강의 침탈에 청나라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 후흑으로 나라의 독립과 자존을 되찾자고자 하는 후흑구국의 정신이 저변을 흐르고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얼룩진 중원대륙은 풍수지리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인구를 부양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처신과 체세술도 다양하며 독특하다.
조금만 튀어 오르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과 같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목숨이 위태로우니 모두 다 자기의 시커먼 흑심을 두꺼운 얼굴로 숨기며 사는 것이 그들의 역사와 세계관에 그대로 녹아있다.
후흑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미가 난득호도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풀 바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어렵다. 즉 자기의 뛰어남을 마치 도배풀을 바르듯이 발라 숨기는 것이 가장 행하기 어려운 고수의 경지라는 것이다.
후흑이던 호도이던 본심과 본모습을 숨기고 가려서 얻고자 하는 것이 나라를 구하고 나의 목숨을 부지하려 하는 지혜로 자리 잡은 어쩌면 서글픈 현실이 자원의 저주를 받은 중원대륙 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중원에서 회자되던 후흑과 난득호도가 21세기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망령처럼 소환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정직과 신뢰이다. 즉 나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정직이며 나와 너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신뢰라고 하는 가느다란 보이지 않는 끈이다.
우리나라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국가임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 두 가지 중에서 산업화는 도구이며 민주화는 본질에 가깝다. 즉 산업화라고 하는 토대 위에 민주화라고 하는 본질이 자리 잡고 있으며 민주화된 세상에서 살고자 우리는 그토록 분투노력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직하지도 신실하지도 않은 무리들이 작당을 하고 대 놓고 공동체를 유린하고 다녀도 다수의 구성원들이 소탐대실하여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고 견강부회하고 면후를 넘어서 철면피를 하고 다녀도 선동을 멜로디 삼아 이리 휩쓸리고 저리 몰려다니며 살신성인한 애국선열들이 지어 준 옷을 입고 산업화의 히든 히어로들이 피땀으로 건설한 건물에서 웰빙 하면서 머리로는 공짜점심만을 생각하고 손으로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원한으로 행동하며 섭리에 따른 두 귀는 아예 닫고 교언영색과 후흑을 넘어선 철면피 모리배들의 선동에 세 번째 귀를 활짝 열고 앞뒤 안 가리고 달려가는 모습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니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