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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팔이 약팔이 돌팔이 그리고 생로병사

by 윤해

2024.04.19


병이란 무엇일까?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도정에 있는 우리들 , 누구는 저항하고 누구는 순응한다. 얼핏 생각해 보면 생로병사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이 주어진 것처럼 보이고 우리는 어쩐지 수동적으로 주어진 운명이나 숙명이 이끄는 대로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를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이 떠도는 일엽편주 신세라고 오해하기 쉽다.


과연 그럴까? 나를 모르는 아부지를 선택해 어무이 몸에 들어가 열 달을 살고 세상에 태어난 우리, 수많은 역경과 성장통을 딛고 일어나 성체가 된 후 서른만 넘어가도 시작된 노화에 맞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며 살기 위해 먹는 것들이 어느덧 먹는 즐거움에 빠져 몸이 원하는 것을 외면하고 입맛에 달콤한 먹거리에 깊숙이 빠져들 나이가 되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소화되지 못한 온갖 영양소가 독소가 될 무렵 먹고 배출하는 세포가 먹기만 하고 배출이 점점 어려워져 마치 병 속에 독소를 차곡차곡 쌓아 놓을 지경이 되면 우리 몸은 본격적으로 병들어 가는 것이다.


이때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식약동원의 진리를 깨닫고 힘써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달달한 음식에 중독된 혀가 원하는 것보다 몸이 원하는 음식을 찾아 먹으면 되는 것을 세파에 휩쓸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핑계 삼아 자병자치의 기본을 망각하고 떡본 김에 제사 지내듯 온몸은 벌써 병색이 완연한 표정을 지으며 병든 것이 벼슬이라도 되는 냥 요란스럽게 병원문을 두드린다.


병 고치는 의원이 아니고 병균이 득실득실한 병원을 가면 기다리고 있는 온갖 검사기기와 사진기만 즐비하고 정작 나의 아픔을 호소하고 들어 줄 명의는 간데없고 투자 대비 수익에 눈먼 돌팔이들이 호시탐탐 나를 팔고 병을 팔아 이것 먹으면 저게 고장 나고 저거 먹으면 이게 잘못되는 마치 몸을 공회전으로 돌리는 회전문 같은 화학약만 잔뜩 손에 쥐어주면서 친절한 의사가 그래도 잊지 않고 던지는 "이제 이약을 드시고 평생 관리 하셔야 합니다"라는 알쏭 달쏭한 선문답 같은 3분 진료를 뒤로한 채 그래도 몹쓸 병은 아니라는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병원문을 나선다.


정녕 이것이 정답이란 말인가? 병을 얻어 병에 막히고 병명을 부여잡고 그래도 아는 병이라 반가워하면서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알 듯 모를 듯 희미한 미소를 짓는 병의 단계에 들어서면 그때부터 인생은 오로지 병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으로 독약도 기꺼이 먹을 태세로 전의를 불태우며 사는 동안 즐겨 먹던 음식을 원수 같이 여기며 병원에서 나를 살려주실 것 같은 의사를 상상 속의 명의로 순식간에 둔갑시키고 한가닥 희망에 올인하는 순한 양이 되어 고분고분 불원천리 마다하지 않고 한 달음에 원거리 병원을 내 집 안방 드나들듯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드는 것이다.


우리가 65세쯤 되면 벌써 상시 먹는 약이 5종 이상 되는 환자가 40%, 10가지 이상 복용환자가 10%를 넘어선다는 통계가 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의 진단 삼총사에게 발목이 잡히지 않는 성인은 드문 게 작금의 현실이다. 내 몸은 너무 소중해서 한 순간도 병의 경계에 진입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이 도를 지나쳐 우리 몸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소중하니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몸을 생체가 아닌 정밀기계로 오해하고 있는 인체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이다. 만에 하나에 집착한 현대의료의 강박증이 노화라고 하는 인생도정의 단계를 병으로 규정하여 온갖 병명을 만들고 이로 인해 야기되는 모든 부작용을 오롯이 환자에게 뒤집어 씌우는 주객전도의 의료는 정의롭지도 지속가능 하지도 않다.


노화의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노화를 병명으로 치환한 병원을 신뢰한 대가는 생로병사에서 병의 다음 단계인 사망마저도 왜곡시키고 임종 때까지 지루한 병마와 씨름하게 하고 익은 감이 무게를 못 이겨 감꼭지가 꼭 하고 떨어지 듯 마감하는 한 생이 아니라 거미줄에 걸린 듯 온갖 생명줄로 둘러싸여 삽관하고 인공호흡기에 둘러싸여 천형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 한 생을 마감할지는 생로병사의 도정에 놓인 우리가 지금 현재 어떤 결정을 하는 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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