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부일체, 성삼위 일체, 새로운 집안의 태양 안해
세미연의 청초하고도 상큼한 꽃봉오리가 청량감을 주는 새벽의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물안개처럼 자욱하게 피어있는 연꽃에 얽힌 이름에 대해 상상을 해본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왜 연꽃은 연화蓮花가 되었을까?
초두머리 艹밑에 이어질 연連 아름다운 모습만큼이나 의미 또한 남다르다.
윤회라고 하는 돌고 도는 불교 철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돌면서 만나는 불국정토佛國淨土가 연화세계蓮花世界이다.
환경이라고 하는 네모에 갇힌 인간이 끝없는 이어짐과 연결을 통해 돌고 돌아 만나고 헤어지고 또 갇히고를 반복하는 연결된 생로병사를 반복하는 가운데 망각하기 쉬운 진리가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번뇌의 중심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해탈한 석가모니의 일성을 잘못 해석한 불제자의 오해에도 기인한 바가 크다.
해탈이라고 하는 것이 말 그대로 나를 죽이고 너를 죽이고 의식을 죽이고 수많은 생각 속에서 행했던 우리들의 업보가 알고 보니 환상에 기반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일련의 깨달음의 과정 속에서 이 우주 삼라만상이 연꽃이라는 연화蓮花를 통해 연화세계蓮花世界인 불국정토佛國淨土로 이어져 있다는 가르침을 발견한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선문답 같은 불교철학을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와 보면 왕조시대 우리 백성들은 유교철학의 군사부일체를 끊임없이 학습받으면서 서열 속에 나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 가를 자각하도록 강요받았으며, 중세시대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을 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을 반복하면서 절대자 앞에 놓인 인간이 어떠한 처지인가를 한 순간도 잊지 말라는 종교적 규율과 가치관 속에서 우리의 서열을 가늠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바뀌고 왕조국가가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되고 르네상스 과학기반 문명이 도래하면서 중세 종교시대도 끝난 지 수 백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는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그 무언가를 찾고 구하는 연기론緣起論의 틀 안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고 또 다른 믿음의 대상을 구하고자 방황하고 있는 초라한 영혼인지도 모른다.
과학기반의 문명은 그 속성상 나누고 자르는데 특장점을 발휘하므로 이 믿음의 대상은 우리 시대 가치관의 혼돈만큼이나 혼란스럽게 나누어져 있다. 늘 말하듯이 물질의 최소단위가 존재하듯이 믿음도 나누고 나누고 나누다 보면 무조건 믿어야 할 최소단위를 발견하지 아니할 수 없다.
군사부일체 시절에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임금도 믿을 수 없다며 낙동강을 건너온 분기탱천 했던 기개가 하늘을 찔렀던 꼬장꼬장했던 조상의 후손들이지만 시대가 변했고 세월이 흘러 일상의 무게가 세월의 무게보다 진하게 느껴지면 잔 펀치에 장사 없듯이 하루하루 군사부에서 임금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스승의 위상은 땅에 추락해 지하를 뚫고 들어간 지 오래되었고, 그래도 하나 남아 있던 아버지마저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정에서 반려견 보다 밀리는 신세가 되었으니 오호통재라! 이러려고 한양도성을 등지고 낙동강을 건넜느냐는 조상님의 탄식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여 제 스스로 낙동강을 도로 건너 한양 도성으로 걸어 들어간 귀책사유도 엄연히 존재하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집안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 안해의 말씀에 따르는 길이 가화만사성, 인연을 따르는 연꽃의 새로운 꽃말처럼 연화세계蓮花世界, 불국정토佛國淨土에 이르는 첩경임은 이제 삼척동자는 물론 반려견도 아는 시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