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5.11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영웅은 시대가 쓰고 버린다.
영웅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쓰고 버리는 풍조가 어느새 국룰이 되어 나룻배에 탄 사람 모두가 객이 되어 입이 있다고 한마디 씩 하면서 저마다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전체를 도외시한다.
물이 들어오는 나룻배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물이 새는 바닥을 틀어막고 손수 물을 퍼내는 방법 밖에 없음을 누구나 모르지 않지만 투신할 줄 모르는 졸부들은 행동은 하지 않고 뻔한 진단에 여념이 없다.
강대국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은 역사가 깊다.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제어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는 현대에 와서 강대국 사이에 대리전을 할 수밖에 없는 약소국가가 필요했고 이 지정학적 저주는 불행하게도 한반도를 비껴가지 못했다.
자원의 저주가 자원부국을 폭망하고 오히려 자원빈국을 부흥시키는 역설적 세계사를 목도하듯이 지정학적 저주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전화위복 했던 건국의 영웅과 경제개발의 영웅들을 우리는 눈으로 보고 호흡으로 느끼며 행동으로 겪은 경험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다.
그런 영웅들을 시대가 쓰고 버린 후 그 영웅들이 이룩한 후광으로 번영의 기틀을 잡고 누리는 지금 우리는 영웅이 떠난 빈자리를 듣도 보도 못한 졸보들로 메꾸고 있는 기현상을 넋 놓고 바라본다.
시정의 장삼이사의 상식도 없는 졸부들이 끊임없이 출현하여 내가 나룻배를 구하겠다고 앞으로는 사자후를 날리면서 뒤로는 쥐새끼 마냥 배 밑바닥을 갉아먹는다.
왜 이럴까?
그것은 우리나라의 처지와 닮아 있다. 강대국과 강대국 사이에 신냉전의 최전방으로서 남과 북이라는 강대국의 대리자, 마리오넷의 역할이 어쩌면 냉철한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가 처한 엄혹한 현실이다.
분단국가가 체제경쟁을 하던 시절에는 저마다 유능한 대리전의 영웅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나 원 사이드하게 끝난 채제경쟁은 지정학적 저주를 가진 우리들에게 뉴 노멀을 요구했고 시대는 더 이상의 영웅보다는 보다 충실한 마리오 넷과 같은 졸부를 불러들였다.
영웅은 시대가 쓰고 버리듯이 시대는 졸부를 영웅대신 쓰고 이용하는 악세를 만났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도한 시대사적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두 눈 부릅뜨고 실체를 파악해서 전말은 알아내어야 우리는 악세를 이해하게 되고 마침내 악세마저 이해를 통해 사랑하게 되어 질긴 동아줄 같은 생명줄을 지킬 수 있는 내공을 가지고 후일을 도모할 가능성의 한 자락을 붙잡을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