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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May 12. 2024

펜과 칼, 전쟁과 평화의 역사

 
2024. 05.12

역사는 글로 기록된다.


수많은 말의 편린들을 끌어모아 그래도 타당하다고 합의된 내용을 모아 글로 만들고 글이 문장이 되어 그 사이사이 켜켜이 왜곡과 정곡이 싸우면서 펜이 칼보다 강함을 시간이 입증해 주기를 기다리며 인고의 나날을 견디고 살아남은 기록이 역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일시적으로 칼이 펜을 꺾고 칼로 기록한 역사가 시대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때도 있다. 칼은 펜보다 단순무식하므로 쾌도난마 하고 일사천리로 역사를 재단하고 달려 나가 오히려 펜보다 정의롭게 역사를 견인할 때도 있다. 즉 펜의 역사는 지지부진, 알쏭달쏭하다. 이 말이 맞는지 저 말이 맞는지 이리 보면 이놈이 맞고 저리 보면 저놈이 맞는 황희정승의 소 같은 우문현답을 요구할 때가 비일비재하다.

펜과 칼은 역사에서 전쟁과 평화로 표현된다.


 우리는 지금 전쟁과 평화 사이의 기나긴 휴전기간에 살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두 세대를 넘어가는 휴전으로 인해 마치 전쟁이 끝나고 평화시대에 살고 있다는 착각을 다반사로 하고 있지만 우리 현생인류가 빙하기 사이의 간빙기에 살고 있음을 깜빡깜빡하듯이 한반도에 사는 우리도 휴전 중에 있음을 잊어버리고 있다.

현대 문명의 발달로 한반도라는 공간, 특히 남한만 놓고 보면 미국 같은 땅 덩이 큰 나라의 시각으로 보면 전국토가 다운타운이요 백번 양보해도 반나절 생활권이다. 마음만 먹으면 아침, 점심, 저녁을 서울 호남 영남에서 먹을 수 있는 나라다. 이 좁은 국토에서 사람들의 의견이 동서로 갈리고 남북으로 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은 사람은 그 사람이 성장하는 공간에 영향을 받고 특히 의식은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


 특히 영 호남이 갈등하는 일차적 원인으로 영남은 산족이고 호남은 들족인 영향이 크다. 산에 사는 사람들은 외적이 침입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를 당하면 그냥 짐 싸들고  산으로 들어간다. 반면에 들족은 사방팔방 터여있기 때문에 외적이 들어오면 대화를 통해 타협한다. 즉 고스톱에서 쇼단, 즉 상담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앞뒤가 같을 수없고 언변이 화려하고 능하며 그 언변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정연한 이론에 기대기보다는 감성에 호소하고 집단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상황논리에 아주 능해야 하며 능수능란한 이합집산을 통한 선사 후공의 생존전략이 생활의 지혜로 자리 잡은 것 아닌가 짐작된다.

투박한 산족 경상도 사람들은 능수능란하고 임기응변에 능한 전라도 사람들을 이해하기에는 말 그대로 산이 높고 골이 깊다.


이 산족 들족에 기름을 부은 것이 근 현대사의 아픔이다. 온 국토가 전장화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지주와 소작인 양반과 상민을 갈랐고 거기에 좌우 이념이 스며들면서 비극적인 학살이 반복되었고 그 틈을 내가 원한을 갚아줄게라고 등장하는 부도덕한 갈라 치기 매국노들이 늘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부류들에게 한번 휩쓸리면 그야말로 그 공동체는 사이비 교주에게 가스라이팅 당해 영혼까지 저당 잡히는 한심한 교도로 전락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강소국가다. 


나라의 최소단위로 보면 한 나라 안에 모든 기능이 다 갖추어져 있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기도 하고 모이기도 하는 하이브리드적인 사람들이 공존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공동체 지도자의 덕목이다. 동시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데이터 기반 신상필벌을 통해 나라의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 어려운 일을 누군가는 해야 우리가 염원하는 진정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에 살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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