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2
첨단이라는 말이 무엇일까?
과학 만능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과학 중에서도 첨단과학에 환호한다.
그러면 첨단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현대인이 열광하고 환호하는 첨단과학은 학문을 자르고 나누어서 바늘 끝까지 자른 상태의 학문을 원한다.
이처럼 거시계에서 미시계를 향하는 방향성이 우리 인류문명의 한결같은 방향성이었다면 현대 문명은 이 방향성의 끝자락에 와 있는 느낌이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의식하지 못하는 미시계 마저 샅샅이 뒤져 밝혀내는 현대 첨단과학의 지위는 과거 중세시대의 종교의 반열까지 올라와 있다.
전체를 가지고 부분을 탄압한 중세 암흑시대의 신학을 대체하여 부분을 적나라하게 파헤쳐서 전체의 허구성을 밝혀낸 현대과학 아래 우리는 사유하고 생각하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러나 부분을 다 합쳐 짜 맞추면 전체를 완성할 수 있다는 환원론적 현대과학 기반의 사고는 우주의 광활함과 더하여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양자역학의 물리학적 세계와 만나 이미 그 용도가 폐기된 상태이다.
현대과학문명을 사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생각과 사고회로 자체가 부분에 몰두하다 전체를 외면하는 자연스러운 구조에 빠져들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고와 갈등이 이에 기인한다.
인류 문명 자체가 부분으로 시작하여 전체를 만들어 덩어리로 명멸을 거듭하면서 눈부신 성공신화를 써내려 갔지만 그 문명성공의 부작용 때문에 부분인 개별생명이 부정당하는 역사 속에서 부분이 전체 속에서 뛰쳐나와 기존의 전체를 부정하고 미시계의 첨단까지 부분을 밀어붙여 부분의 실체를 밝혀내고 그 밝혀낸 부분의 실체를 짜 맞추어 새로운 전체를 만들고자 분투노력한 지난한 과정이 과학 아니 첨단 과학의 지향점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체가 부분을 철저하게 무시했던 신학이 지배했던 중세 암흑시대의 전철을 신학을 대체한 첨단과학이 답습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분절화되고 나누어질 대로 나누어져서 파편화된 현대 첨단 과학의 편린들을 모으고 모아 새로운 전체를 만들어야 함에도 여전히 과거 중세시대의 관성에 익숙하게 부분의 진실을 가지고 실체적 전체를 무시하는 과오를 반복하고 있다.
산유국의 꿈을 현실로 바꾸어 보려는 동해 석유 발표에서도
좀 안다는 지식인도 이 대열에 동참하여, 경제 전문가는 석유 생산 원가구조를 이야기하면서 경제성이 ‘있느니 없느니’를 논하고, 기술 전문가는 개발 과정 중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점 하나를 물고 늘어져 전부인 양 침소봉대하고, 정치 비평가는 현 정부의 성급함을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는 펙트 앞에서 우리는 부분 속에서 전체를 보지 못하는 현대 과학만능주의에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나와 나라, 개인과 국가, 부분과 전체의 화합되지 않는 불협화음의 뿌리는 의외로 역사가 깊고 이론적 토대가 강고하다.
우리 공동체는 첨단과학과 부분만을 보는 첨사가 아니라 그 부분이 얼마나 전체에 기여하는가를 계량할 수 있고 사분오열된 강력한 부분을 아우르고 화합시킬 수 있는 첨단의 지식과 너른 지혜를 겸비한 명실상부한 박사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