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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목아래서 반추하는 역사의 평행이론,

by 윤해



2024.06.11

전쟁의 기운이 나라를 감싸고 있을 때 국가를 보위하고 적을 무찌를 능력을 가진 무인을 발굴하여 무장으로 키우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야말로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닥칠 때 가뭄에 단비를 뿌리는 일과 다름없다.

나라의 기운이 정체되면 그 나라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기운마저도 밖으로 뻗지 못하고 안에서 맴돈다. 널리 인재를 모으고 힘을 합쳐 밖으로 나가 먹거리를 챙겨 와야 나라가 부강해짐이 정한 이치이나 혼군을 만나면 나라안에 있던 인재마저도 아무도 찾지 못하는 심산유곡으로 숨는다.

혼군 밑에서 죽을힘을 다해 나라를 구해본들 돌아오는 것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은 전후 혼군 선조의 국문장 대신 노량해전의 전장에서 왜군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하는 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혼군이 거듭되면 나라의 기풍이 사그라들고 모사꾼과 모리배들이 양두구육의 탈을 쓰고 기강과 법을 뒤 흔들면서 아예 자기들 손으로 악법을 다반사로 쏟아내며 인재의 접근을 원천봉쇄한다.

겹겹이 잘못이 반복되면 평시에는 표시가 나지 않고 꾸역꾸역 버티어 가지만 외부의 충격이 가해지면 그 나라는 한순간에 절단 나는 것이다.

임진왜란의 왜군은 백 년간의 내전을 거치며 실전경험을 가진 그 당시 세계최강의 군대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그 왜군을 상대로 7년간의 항전 끝에 격퇴시킨 조선의 저력과 40여 년이 흘러 왜국 못지않게 업신여겼던 여진이 세운 청군에게 힘 한번 못쓰고 남한산성에서 두 달간의 농성 후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조선은 그사이 무엇이 달라졌을까?

혼군 선조는 이순신만 죽이려 한 것이 아니다. 왜군에 맞서 이 땅을 지키려 한 수많은 의병장들을 전장이 아닌 혼군의 감옥에서 옥사시켰다. 그것으로 모자라 임진왜란을 결산하는 공신첩에서 전쟁영웅들을 자신의 피난길에 호종한 내시보다도 하등에 기록했다.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의 백성들은 혼군 선조의 공신첩에서 큰 충격을 받고 40여 년 후 터진 병자호란 때는 아무도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호란을 겪고 수십만의 백성과 소현세자 일행이 선양에 끌려가고 선양에서 산하이관을 넘어 도르곤이 이끄는 청군과 함께 북경에 입성하면서 마주친 서양문물을 접하고 조선에 적용해보려 하였으나 귀국 후 혼군 인조의 배척으로 의문의 독살을 당한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조선은 내리막길로 달려갔던 것이다.

명군 정조의 명을 받아 무예도 보통지를 편찬한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와 같은 실학자와 무인들이 결국 정조의 죽음과 함께 서얼이라는 신분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라진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더 이상 인재를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89년부터 심기 시작하여 한세대를 자라난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서 먼 옛날 바이칼호를 출발한 샤먼족이 수많은 생사를 넘나들며 한반도에 정착하여 명멸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선진국 밑까지 다다른 우리들의 이야기를 자본을 만드는 나무라는 이름 그대로 자작목 한그루 한그루에서 반추해 본다.


산업화를 통해 자본을 만들고 민주화를 통해 국민이 주인이 된 세상을 만들었지만 그 국민이 혼군이 되어 도로 자유를 모리배들에게 스스로 던져버리는 희한한 현실에서 과연 자유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 산업화 과정의 땀과 함께 민주화의 피까지도 합하여 피땀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역사의 평행이론을 반복하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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