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2
식물이 아닌 동물로서 우리 인류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고 새면 일어나 움직여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수렵채집과 사냥에 특화된 우리 인류가 농업혁명을 통해 정주생활을 하면서 노동이 시작되었고 그 지난한 노동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생각에 대형동물을 가축화하였고 가금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알과 고기를 공급받으려는 시도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성공의 이면에 가리어진 인류의 험난한 노동이 숨어 있다.
이렇듯 우리 인류에게 있어 노동은 정주생활을 시작한 이래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왔고 모든 정치조직과 기성종교는 왕권신수설과 함께 노동신수설로 무장하여 왕과 노동을 신성시하였다.
불 화자 두 개와 덮을 역자가 합해 등불을 밝혀 밤에도 힘을 쓰는 모습이 일할 로(勞)자이다. 따라서 로자는 밤에도 등불을 밝힌 채 열심히 힘쓰는 모습에서 일할 로는 다른 뜻으로 지치다 고달프다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처럼 농업혁명을 통해 정착하게 된 인류 앞에 운명적으로 다가온 것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코린토스의 왕 시지프스(Sisyphus)가 매일 산 위로 바위를 굴려 산꼭대기로 올려놓으면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내려가는 무한 반복의 노동의 형벌과도 같은 처지로 내 몰린 것과 같다.
농업혁명과 가축화를 거쳐 산업화까지 우리 인류가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갖 힘을 쓰면서 노동에서 탈피하려고 하였지만 그 허울 뒤에 숨은 인류의 욕망은 간과되어 그때그때마다 더욱더 빠져나오기 힘든 노동환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천형과도 같은 인류노동의 종말은 의외로 다른 존재가 아닌 기계라고 하는 산업혁명의 선물로 우리 인류에게 다가왔다.
산업혁명을 통해 수많은 기계가 발명되어 인류의 노동이 빛이 바래기 시작한 순간 인류는 만년의 관성을 어쩌지 못하고 러다이트 운동을 일으키면서 기계를 부수고 신으로부터 받은 신성한 노동을 지속하려 했다.
농업혁명에서 시작된 노동의 역사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기계로 대치되었고 인류는 더 이상 노동하는 인류에서 운동하는 인류로 탈바꿈해야 했으며 그 중심에 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영국의 직물섬유 도시가 있었다.
맨체스터, 리버풀과 같은 도시가 오늘날 프리미어리그의 정상에 있는 축구팀을 가진 도시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고 노동이 운동으로 가야 했던 인류문명사의 특이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노동하는 인류에서 운동하는 인류로 바뀐 지도 이 백여 년이 흘렀지만 지난 만년의 관성으로 여전히 운동보다는 노동이 익숙한 우리 인류에게 노동이란 농업과 산업화 시대에서 온몸을 쓰는 노동에서 정보화 시대에서 눈과 귀를 혹사하는 노동으로 변모하고 운동은 직접 하는 운동에서 프로 선수들이 활약하는 보는 게임으로 탈 바꿈 되는 분업화되고 자본화된 세상에서 노동은 근시와 난청을 낳았고 운동은 일반인에게는 너무 먼 당신이 되어가 비만을 부르고 프로 선수들에게는 신체의 혹사와 무리를 가져와 부상과 재활의 악순환 속에 인류를 재배치하고 있다.
이처럼 몸을 움직이고 사는 동물로서의 우리는 노동하는 인류에서 운동하는 인류로 탈 바꿈 되었지만 실상은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문명의 흐름은 동물로서 우리 인류를 사이버 세상에서 뇌만 움직이는 기형화 된 인류로 진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효율과 가성비를 최고선으로 내세우는 문명의 방향은 필연적으로 노동의 종말과 함께 운동마저도 자본의 입김이 작용하여 하는 운동에서 보는 게임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이제 그 게임의 알고리즘이 우리 인류의 모든 영역에 자리 잡아 현실세계가 아닌 가상세계의 일원으로 우리 인류를 자리매김하는 문명의 대전환 앞에 우리 모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예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