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9
오늘날 테스형이라는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지를 설파함으로써 인류철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2500여 년 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서양철학의 태두로서 등장하였고 전쟁에 직접 뛰어든 용사로서, 아테네 젊은이의 정신적 지주로서, 행동하는 철학자의 전형으로서, "악법도 법이다"라고 외치며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던 그를 보면 말과 글을 뛰어넘어 실체적 진실을 향해 나아간 소크라테스 그리고 번번이 악처(?) 크산티페에게 잔소리를 듣다가 화를 주체하지 못한 크산티페로부터 물 바가지 세례를 받으면 " 천둥이 친 다음에는 늘 비가 오는 법이지 " 하며 태연스럽게 결혼생활을 이어간 테스형의 위트와 풍모에서 서양철학의 정수를 보는 듯하다.
이러한 서양 철학의 정수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에 의해 기록으로 남겨졌고 플라톤은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를 제자로 길러낸 서양철학의 명맥이 어쩌면 현대 인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이상국가와 정의에 대한 통찰을 기록하였다. 그에 따르면 이상국가란 철인이 지배하고 전사가 수호하며 생산자가 필수품을 생산하는 이상적인 사회구성원이 살아가는 국가를 이야기하면서 정의에 대한 깊은 이해, 리더십에 대한 통찰, 교육의 중요성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이상국가의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했다.
따라서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중산층에 의한 민주주의를 국가 정치체제가 이상 국가에서 전사 국가로 전사 국가에서 부자 국가로 부자 국가에서 민주국가로 타락하는 과정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오늘날 심지어 공산주의 국가마저 그 국가의 공식 명칭에는 민주라는 말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가장 타락한 정치체제로 규정한 민주주의를 오늘 현대 국가들이 앞 다투어 국가 이름에 내 세우는 이유가 퍽이나 궁금하다.
어쩌면 민주주의는 타락한 정치체제가 아니라 궁극의 정치체제일지도 모른다. 국민이 주인임을 선언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있고 감격적인 일인가? 더구나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인형 안에 또 인형이 들어 있듯이, 투명한 조직 안에 또 조직이 있는 계층(hierarchy)과 조직, 폭군과도 같은 왕정에 대한 반동의 정치체제로 다가온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타락한 정치체제라고는 아마 꿈에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부자 국가를 표방한 자본가 브루쥬아가 민중을 등에 업고 혁명을 통해 왕정을 뒤엎었으나 폭군 못지않은 자본가들의 횡포에 대항하는 프로레타리아 계급에 의한 공산주의 일당독재가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선언적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세상의 정치체제로 굳어진 지금은 과연 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예견한 바와 같이 타락한 정치체제인지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나라로 우리나라만큼 적합한 나라도 드물다. 삼백 년이 넘는 산업화와 민주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구열강에 비해 백 년 남짓 산업화 민주화의 압축 성장을 해온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 절차적 민주화뿐만 아니라 국민이 주인 되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주의는 민주팔이 사이비 민주화 세력들에 의해 왜곡되고 날조되어 가고 있고 여전히 도로 조선의 향수에 기대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부가 공존하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할 인형은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도 아니고 호두까기 인형도 아닌 모두 까기 인형이 적합한 시대상이 아닐까? 나의 염려가 기우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