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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May 03. 2024

오늘도 놀 궁리, 내일도 놀 궁리, 하루하루 놓을 궁리



2024.05.04

논다는 것이 무엇일까? 농경시대의 끝자락에 태어나 산업화 시대의 한복판을 거치면서 노동을 신성시하는 노동 신수설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질 좋은 태엽시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깍재깍 소리가 마치 갓난아기의 요람 속 천진한 자장가 소리로 여기며 해 뜨면 몸을 일으켜 직장으로 달려가고 해지면 노동으로 지친 몸을 달래려 발효된 곡차로 알딸딸 해지면 해맑은 얼굴로 세상 근심 잊어버리고 여우 같은 안해와 토끼 같은 자식이 잠자고 있는 가정으로 들어가 내일의 노동이 비록 시지프스의 저주라 하더라도 멀쩡한 사지 육신으로 회복되면 희망찬 내일의 태양과 마주하는 반복된 일상을 강산이 세 번 바뀌도록 묵묵히 돌린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직업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인간 군상들과 씨름하면서 업을 짜는 과정이다. 이 업이라는 옷감은 자기 한 몸 나아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헤어지지 않게 질기고 튼튼하게 짜는 과정에서 수많은 은원을 만들어 내고 이 은원이 업장을 쌓게 하여 우리를 웃고 울게 하면서 한 세상을 돌리는 것이다. 때가 되어 힘이 빠져 더 이상 업이라는 옷감을 짤 기운이 사라지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퇴직을 명 받고 그동안 세상 속에서 파란만장했던 직업에서 은퇴하게 된다.

은퇴 후 느끼는 상실감과 허전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마음속 깊은 심연의 고통이다. 우리가 세상 속을 입세하기도 어렵지만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빠져나오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세월의 무게는 한 인간이 짊어지기에는 버거운 측면이 많다. 더구나 그 세월이 찬란했던 청춘을 바친 시간이었다면 개별 인생 하나하나에 묻어있는 애환과 기쁨 그리고 상처가 각별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가정으로 돌아와 인생 2막을 열려는 우리에게 그 가정은 정말 수학의 가정인가 싶을 정도로 가장이라는 가정하에 존재한다는 서글픈 현실을 목도하는 일이다. 가족의 안위를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고 싶지만 가정은 여전히 가장의 무게를 감당하는 가장을 원하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면 수족이 다 잘린 헤어진 몸으로 또다시 퇴직을 명 받은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나 마나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 자신을 발견한다.

이처럼 은퇴는 삶의 축복인 동시에 충격이다. 어떤 이는 차근차근 준비하여 축복받은 인생 2막을 여는 반면 또 어떤 이는 우당탕탕 온갖 파열음을 내며 충격으로 가득한 은퇴생활로 진입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은퇴가 자발적이든 강요에 의해서든 우리는 이미 씨줄과 날줄을 가지고 업이라는 옷감 짜는 단계를 지나쳐 그 옷감을 과감하게 잘라 해체하고 그동안 쌓은 업장을 소멸시켜야 하는 노는 사람 아니 놓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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