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7.24
부모로부터 몸이라는 옷을 입고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 부모에게 신세를 진 것이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는 제목처럼 우리 몸은 신체발부가 수지부모한 것이므로 어디가 닮아도 닮아 나오기 마련인데 불임의 남편에게 찾아온 씨 다른 소생마저도 나의 발가락과 닮았다고 우기는 주인공의 독백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부모에게 신세를 진다는 의미가 얼마나 질긴지 가늠해 본다.
부모에게 신세 진 그 몸을 가지고 우리는 세상을 살다 보면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서로 신세를 끼치며 은원 간 관계를 맺으며 누구에게는 그 은혜를 갚고자 하고 누구에게는 그 원한을 돌려주고자 한다. 그로부터 인생의 파란만장한 만남과 헤어짐을 가지게 되며 그 와중에 산절수절이라는 인생의 곡절을 겪게 되고 시비지심 속에서 평정심을 잃어가는 것이다.
신세를 지고 끼치는 것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 하더라도 신세를 갚는 것은 얼마든지 의지를 가지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인생이야기는 신세를 지고 끼치는 스토리로 가득 차 있고 신세를 갚는 이야기는 빠져 있거나 남의 이야기하듯 유체이탈 화법이다.
우리가 한생을 정리할 때 마이크로적으로 이야기해 보면 이유와 변명으로 금방 채워지는 것이 태반이다. 그러나 본질을 붙잡고 마크로적으로 생을 통찰해 보면 시대나 사회의 변화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도도한 강물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적령기의 남과 여는 만나서 짚신도 짝이 있다는 믿음으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앞선 부모가 그리 했듯 대를 이어야 부모의 신세를 갚는 것이고 , 부모가 오래 사셔서 기대수명이 100세를 육박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신세를 진 부모이므로 이것은 효도가 아니라 신세를 갚는 차원에서 있는 힘을 다해 봉양을 해야 한다.
이러한 일을 비록 완수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하려고 시작은 해야 한다. 그러나 말은 쉬워도 행동은 어렵듯이 신세를 갚는다는 것은 호락 호락하지 않다.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지 않으면 어느새 몇 마디 이유와 변명을 대면서 도망가 있는 자기를 발견하곤 한다.
별의별 정보와 이유와 변명이 넘쳐나고 모든 행위가 돈으로 환산되는 현대에서 우리가 번번이 놓치는 것은 진짜 중요한 것은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가지는 본질보다도 좀 더 과대포장되어 우리에게 다가옴으로써 우리가 돈보다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핑계무덤을 만들어 그 무덤이 산이 되고 이제 그 산이 우리를 덮치게 된 것은 아닐까 한번 의심해 본다.
신세(身世)라고 하는 말 그대로 세상에 몸을 의탁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삶이 그러하듯이 생존투쟁이라는 가혹한 환경에서 활로를 구하려면 자신의 노력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음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한 생이다.
이러한 운명의 고해를 지나 숙명의 바다를 건너가노라면 우리는 드디어 신세를 지고 끼치고 갚는 한 바퀴 인생을 돌렸다는 자신만의 감각으로 배를 몰아 신세계라고 하는 새로운 항구에 정박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