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에 들러 임진왜란 개전초기 전쟁의 명운을 결정한 신립의 탄금대 전투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리고 이 전투 패배로 이어진 선조의 의주까지의 몽진과 명의 개입 그리고 정유재란까지의 명과 조선 일본 간의 지루한 대치를 틈타 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꿀 북해의 곤에 불과했던 여진족이 후금을 거쳐 청이라는 대붕이 되는 과정은 너무나 드라마틱하고 극적이다.
전쟁은 총력전이다. 총력전을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순간순간 전장에서 일어나는 판단이다. 전시는 우리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평시와 난세의 영웅은 많이 다르다. 판단의 박자와 리듬이 조금만 어긋나도 바로 전멸하는 전장에서의 결정과 갑론을박의 시간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임진왜란 직전 사색당파로 여념이 없었던 시절의 판단과는 판단의 질이 많이 다르다.
임진왜란 전 여진족을 휘어잡던 북방의 명장 신립은 천혜의 요새 문경새재를 포기하고 뻘로 뒤덮인 강가에서 배수진을 치고 파죽지세의 왜군과 정면 대결을 벌인 결과는 참혹했고 평시의 명장 신립은 난세의 명장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평시에 미관 말직을 전전하던 임진왜란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은 전시에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뛰어난 준비와 판단으로 나라를 구했다. 이렇게 전장은 우리의 숨결이 바람이 되고 그 바람이 바람이 되어 역사를 바꾸는 것이다.
그 처절했던 임진왜란의 교훈을 깨치지 못하고 광해군의 실용외교를 헌신짝 던지듯 던졌던 인조반정공신들은 논공행상의 역풍으로 불거진 북방 이괄의 반란 정예병을 간신히 진압한 후폭풍으로 북방의 빈틈을 노린 후금이 일으킨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종결지은 남한산성에서 이제 신무기로 무장한 조선의 조총부대는 속절없이 후금의 기병에게 무너졌다.
조선의 조총부대가 남한산성에서 조금만 버텨줬다면 천연두로 죽어나가던 후금의 병력손실과 보급 없이 전격전을 감행한 후금이라는 곤이 대붕으로 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삼전도의 치욕 후 대붕이 된 청의 중화질서 속에 놓이게 된 조선은 소중화라는 명분만을 부여잡고 그 당시 세계 최대 제국이 된 청나라라고 하는 대붕이 날개를 활짝 펴고 비약하는 모습을 북해의 곤이 되어 처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해양세력의 주구가 되어 일으킨 임진왜란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명을 멸망케 하고 청이 중화제국이 되면서 청과 조선 일본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중화질서의 균열로 이어지고 이 균열은 그 후 이백 연도 되기 전 산업혁명까지 거친 해양세력에 의해 서세동점의 국제질서를 기어이 완성시켰고 그 질서는 오늘날 우리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