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1
말과 글이 난무하는 현대에서 말만 하면 말이 되고 글만 쓰면 글이 된다고 생각하고 생각을 너머 그렇게 실행하는 사람이 종종 나타난다. 말과 글의 폐해중 하나가 분별없는 자가 길도 못 들인 망아지 마냥 말과 글을 함부로 내뱉고 쓰는 행위이다. 이러한 발화된 말과 글의 홍수 속에서 균형을 잡고 중심에 서서 올바른 판단과 평가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정보라는 것은 마음을 청정하게 가다듬고 알린다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알린다는 행위에 있어 사심과 욕심이 들어가면 그 정보는 정보로서의 기능을 이미 상실한 왜곡된 정보가 되는 것이다. 이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하거나 결정을 하면 그 결정의 결과는 헤어 나올 수 없는 판단착오로 이어지고 이 착오의 결과는 이후 오래 동안 개인이나 공동체에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사회가 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소식이 소문이 되고 소문이 뉴스로 바뀌면서 생생한 날것의 정보를 갈망하다가 가짜 뉴스 전파자에게 낚여 정보가 아닌 뜬소문에 휘둘리는 모습이 우리의 일상사가 되곤 한다.
더구나 언론기관이 특정집단에 볼모로 잡혀 왜곡된 정보를 양산하면 그 폐해는 실로 세대를 넘어 회복할 수 없는 처지로 공동체를 내모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언론이나 매스미디어는 누가 봐도 잘못된 사안은 모호하게 실드를 치며 사건을 애매 미궁 속으로 몰아가고 애매모호한 사건은 특정집단의 편익에 경도되어 핏대를 올리며 반드시 그리 해야 한다며 온갖 근거를 잡아끄는 곡학을 하고 나아가 세상에 아부하는 아세를 하며 혹세무민 하기에 여념이 없어지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특정이익을 대변하는 무리의 특징은 떼로 몰려다니며 공공영역을 사익화하는데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며 오늘도 내일도 공동체의 지속성장과 무관한 업을 다반사로 저지르면서 입으로는 공동체의 최고 이상을 노래하고 있으니 지행불일치의 모델을 아낌없이 시연하고 있으나 편함과 이익에 눈먼 대중에게는 달콤한 말과 쉽게 얻는 편익의 감미로움을 내치고 혹세무민의 마수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현대는 정보가 없어서 올바른 판단을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회가 아니다. 반대로 정보가 흘러넘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가 어떤 계약을 할 때 예를 들어 아파트를 분양을 받거나 보험가입을 할 때 거의 한 권 분량의 약관과 마주한다. 글씨 자체가 깨알 같기도 하지만 그 정보의 방대함에 감히 그 약관을 한 번이라도 읽을 엄두를 못 내고 설사 노력을 투입해 읽었다 하더라도 그 난해한 법률용어를 경우에 맞게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인 것이다.
그러면 보험사나 아파트 건설사는 이 사실을 모를까? 너무나 잘 알고 이점을 이용하여 자기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분양자나 가입자에게는 올가미에 걸리게 하여 문제가 생기면 빠져나갈 탈출구를 여러 개 마련해 놓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탈정보다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정보를 제공하기에는 너무나 뒤가 켕겨 수많은 정보를 뒤죽박죽으로 섞거나 무지막지하게 정보를 상대방에게 제공하면 정보를 주지 않았다는 비난에서는 자유로워지고 계약자는 그 방대한 정보를 읽고 이해할 수없으니 이거야 말로 수많은 정보 때문에 정보에서 벗어나는 탈정보라 부를 만하지 않는가?
정보가 차고 넘치는 우리 사회는 이미 탈정보 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다. 그리고 탈정보 기법이 이제는 전 사회에 만연하다. 정보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정보 앞에서 답답해하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이런 사회일수록 정보의 감량만큼이나 우리의 욕심을 내려놓는 태도가 중요하다. 버릴 줄 아는 용기, 담백하게 살겠다는 작정한 사람 앞에서 탈정보를 이용해 기만할 수 있는 조직은 별로 없다.
온갖 정보를 전하는 매스미디어에서 요즘은 전과와 죄명을 나열하기도 어려운 인간의 혐의를 듣다 보면 우리 사회가 어느덧 탈정보를 넘어 탈범죄 사회로 가고 있지는 않는지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