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2
체와 용, 형식과 실질, 겉과 속 그리고 얼굴과 마음 같이 나의 순수한 마음을 버선목을 뒤집을 수 없어 답답해하며 너는 오해를 하고 나는 이해를 구하는 이율배반적 존재가 바로 우리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말일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속에 있는 생각을 겉으로 끌어내어야 사회 구성원 간의 단합을 도모할 수가 있고 이 단합을 바탕으로 한 단계 높은 공동체로 도약할 수 있으므로 세상은 형식적이고 물리적 단결을 너머 실제적이고 화학적인 화합을 이루고자 너나 우리 할 것 없이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구성원 간의 단합을 이루기 위해 우리 인류가 만들어낸 문화가 종교제의를 비롯한 제사의식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제물을 봉헌하는 행위를 통해 접신하고 공동의 신을 믿는 제례의식을 통해 공동체를 단결시키고 공동체 구성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행위는 문화를 통해 문명을 일으킨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며 실지로 인류가 정착한 그 어느 곳에서도 빠지지 않고 관찰되는 모습이다.
백의민족이 의미하듯이 제사장 민족으로서 바라보는 우리 민족의 특질 중에 하나가 제사를 아주 중히 여기는 민족임을 알 수 있다.
100년 전 만 해도 우리들은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이라는 유교적 원리에 순응하여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하고 돌아가신 조상님께 제사 지내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일이라 여기며 살았다.
어쩌면 지난 100년간은 종교제의를 비롯한 제사의식이 물질문명이라는 새로운 사조에 밀려 퇴락하고 점차 사라지는 문명사의 반동이 조장되고 심화되는 대혼돈의 아노미(anomie) 시대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수천 년간의 샤머니즘 시대를 지나오면서 북극성과 북두칠성 신화를 믿는 천손민족을 거쳐 유교적 기반의 제례가 제사로 이어져 조상신을 믿는 봉건질서에 순응하며 살던 우리가 홍수처럼 밀어닥친 서구사상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산업화와 민주화의 격랑을 헤쳐나가면서 새로운 서양 종교가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고, 도심 밤하늘을 온통 십자가 불빛만이 반짝거릴 때에 고향을 떠나와 객지에서 심신을 보듬어줄 종교적 위안처는 수천 년을 이어온 샤머니즘도 삼신할머니도, 유교적 봉건질서 속에서 생활화된 조상신을 모시던 제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부계사회의 장자상속권을 기반으로 내려오던 제사는 음지에서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이 땅의 종부를 위시한 며느리들의 열정페이를 갈아 넣은 결과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던 며느리들의 반란으로 지난 100년간 제사라는 봉건적 질서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였으며 이제 바야흐로 그 등불이 촛불이 되었고 머지않아 그 촛불은 꺼질 운명에 처해 있다.
부모님과 자식을 함께 부양해야 하는 첫 세대이지만 과거의 종부(宗婦)나 며느리가 제사라고 하는 제례의식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고 대우라고는 전혀 받지 못했던 열정페이를 갈아 넣었듯이 지금의 가부장(家父長)들도 수많은 제사를 드렸음에도 궁극적으로 자식으로부터 제사상을 받는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 ) 상상도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그저 유교의 사생관, 영혼은 날아가고 몸은 산산이 흩어지는 혼비백산(魂飛魄散)을 실천하는 길이 면구(面灸)하고 면목(面目)이 없는,얼굴이 아니고 마음입니다를 그나마 실천하는 첩경(捷徑)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