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3
자연에 묻힌 사람의 섭리와 세상을 사는 인간의 원리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조금은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연의 일부로서 사람은 이름 그대로 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사방팔방을 관조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이 자연의 일부로서 묻혀 살던 사람은 싸울 필요도 없고 이길 이유도 없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개성적 존재이자 주관적 섭리의 존재이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가 지배하는 미시계를 가로질러 생명계로 진입하는 순간 우리 앞에는 세상이라는 거시계가 등장하고 그 거시계를 움직이는 하나의 일부인 인간으로서 생존경쟁을 통해 남을 거꾸러트리고 이겨야만이 살아갈 수 있다는 세상의 원리를 배우면서 인간이라는 객관적이고 상대적인 존재로서 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에 의해 태어난 우리가 세상의 원리에 의해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자 운명이다.
우리가 받은 숙명을 생각하면 이미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있는데 무엇을 가지려 아웅다웅할 것이며 누구가 있어 다투고 이기려 할 것인가?
그에 반해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이라는 거시계 안에서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서는 생존경쟁을 통해 다투고 이겨야 잘 살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세상의 원리에 따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지극한 (도라) 일컬어지는 하늘을 짝한 이는 누구인가? (是謂配天 古之極)” (노자 제68장)"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 자신 있게 하늘을 짝한 이는 우리 안에 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인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의 품성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가 하늘이라는 짝을 버리고 땅에 두발을 디디며 살기 위해 이전투구도 마다하지 않으며 숙명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운명이 명령하는 데로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문득문득 머리를 스치는 부쟁지덕(不爭之德)과 선승이전(先勝而戰)이전의 하늘의 섭리가 생각나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눈앞에 먹거리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섭리는 지워지고 세상의 원리를 따라 싸우는 것이 최고이고 이기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하며 온갖 업을 저지르는 세상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운명의 장난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원리 아닐까?
부쟁지덕(不爭之德)과 선승이전(先勝而戰)의 존재인 사람으로서 우리, 생존경쟁이라는 운명의 바퀴를 돌려야 하는 인간으로서 우리, 무엇보다도 하늘의 짝이며 땅의 친구이기도 한 우리라는 자각과 깨달음을 통해 모순적 존재로서의 우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훨씬 더 사랑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