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6
착각을 기반으로 만든 문명사회에서 승자들 뿐만 아니라 패자마저도 착각을 사실로 포장하고 왜곡을 진실로 탈바꿈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도긴개긴이요 오십 보 백보이다.
바로 직전에 일어난 사실에도 진술이 엇갈리고 자기만의 가치관이라고 하는 거울에 비추어 사리판단을 하고 마는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나약한 동물에 불과한 우리 인간들이 모여 만든 문명사회의 도전과 응전을 기록한 역사는 그 자체로 착각과 왜곡이 섞여있고 증오와 희망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역사라는 태생도 이렇게 힘든데 여기에 더해 역사가 과거와 현재가 나누는 대화라니? 엎친데 덮친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될까?
대화는 화자話者의 수사학이 아니라 청자聽者의 심리학이다라는 말은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역사를 증언하는 화자話者의 기록이 명백한 팩트로 문서화되어 남아있고 역사로 전해져도 청자聽者가 귀를 닫고 눈을 감으며 이렇게 되었어야 했다는 청자聽者의 바람이 마음까지 닫아 버리면 그 이후의 역사는 더 이상 기록이 아닌 해석으로 점철되는 청자聽者의 심리학으로 마무리될 뿐이다.
그러므로 역사도 어렵고 대화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 사례가 한일관계다. 한일관계는 어찌 보면 개인으로 대비해서 보면 형제 관계이다. 형제도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어릴 때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티격태격하면서 부모라는 강력한 권력자 밑에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싸우면서 성장하듯이 한일 양국도 애증의 관계 속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강대국이 주도하는 역사의 격랑을 지금껏 헤쳐 왔다.
중국 대륙세력이 주도했던 중화질서 안에서 한반도는 일본열도에 뛰어난 문화를 전해주는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면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해양세력이 신대륙에서 힘을 키워 일본열도를 발판으로 한반도를 거쳐 중국으로 향하는 문명 헤게모니의 역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즉 동아시아 대전을 시작으로 삼백 년의 각축 끝에 탈아입구(脫亞入歐)를 기치로 한 일본의 명치유신을 변곡점으로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겪으면서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한 일제의 군국주의는 한일관계의 역사적 균형을 완벽히 무너뜨리고 지배와 피지배의 35년을 보내면서 반일과 친일이라는 극단적 프레임을 공고히 하면서 한일 근현대사를 사분오열 시키고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의 대화라는 양국 간의 역사적 실체마저 기록이라는 화자의 수사학이 아니라 반일과 친일이라는 청자의 심리학으로 흘러가면서 감정으로 파탄 낸 관계를 이성으로 수습하지 못하는 지경에 와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우월한 문화를 탁란托卵 삼아 아스카(飛鳥),즉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가 된 일본은 나라, 교토라는 시대상을 반영한 색깔이 다른 도시를 건설한 국가답게 인류 초유의 원폭을 맞고도 핵 페허 속에서 부활한 저력의 나라다.
비록 아픈 과거 속에서 피해자가 된 우리들로서는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이지만 반일과 친일이라는 극단적 프레임은 착각과 왜곡에 기반한 선동과도 같은 희망고문일 뿐이지 한일 간의 미래를 위해서는 극한克韓과 극일克日을 기반으로 하여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 서로가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태도가 한일 간의 역사를 한발자국이라도 바로세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