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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덕지(感之德之), 감사를 달고 덕을 베풀며 산다

by 윤해


2024.09.08


분(分)에 넘치는 듯싶어 매우 고맙게 여기는 모양(模樣)이라는 의미의 감지덕지(感之德之)라는 말이 실종된 세상이다.


가난에서 탈출한 사람이 백사람이라면 풍요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빈곤과 풍요의 역설을 그대로 수긍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는 가난과 풍요를 제대로 빠져나온 사람이 매우 드물다는 데 있다.


오천 년 가난에서 빠져나왔다는 말을 우리 베이비 부머 세대는 정말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많이 듣고 살아온 세대이다.


어떤 역사학자는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단군할아버지께서 부동산 사기를 당하셔서 우리가 지금껏 살고 있는 이곳에 자리를 잡고 반만년 간 힘들게 살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나타났다.


엄밀히 말하면 단군 할아버지께서 개국하신 고조선은 풍요로운 만주에 자리 잡았지 산지가 70%가 넘어가는 한반도에 터를 잡은 것은 아니니 이 말은 그저 풍요로운 만주를 뺏기고 궁벽한 한반도로 내몰린 우리 민족의 자조 섞인 변명 정도로 들린다.


어쩠던 국가 차원에서 오천 년 가난의 시발점이 된 한반도에 정착한 우리 조상들은 살기 위해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가장 큰 벼농사를 선택했고 노동집약적인 벼농사의 특성상 많은 인구가 필요했고 이모작 삼모작까지 가능한 벼농사 곡창지대에 비해 일모작은커녕 가뭄까지 감안하면 0.7 모작에 불과한 한반도에 논을 일구고 물을 가두어 기어이 쌀을 먹고사는 농경민족으로서 한반도에 정착한 것이다.


다랭이 논으로 대표되는 70%가 넘는 산지에서 벼를 경작하는 불가능에 도전했던 우리 조상들의 생존능력은 그 자체로 경쟁력을 키웠고 가난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그 가난에 더해 시도 때도 없이 100만 대군으로 침공해 오는 중국의 통일왕조, 바다로부터 노략질하는 왜적의 침입에 맞서 나라를 지켜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초능력자가 바로 우리 조상님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백만 대군은 인구비로 따지면 지금의 1억 대군이요 그 당시 중국대륙의 통일왕조는 지금의 팍스 아메리카나이다. 즉 미군 1억 명이 한반도를 침공했다고 가정하면 한반도의 가난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조상님들이 이 나라를 지켜낸 초능력에 그저 감지덕지(感之德之)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초능력은 현재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불쑥불쑥 나타나 그때마다 우리를 놀라게 한다. 파리올림픽에서 활과 칼 그리고 총에서 싹쓸이 한 금메달의 개수는 그저 세계인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할 뿐이다.


우리만 모르지 우리는 전 세계 톱클래스의 전투민족이다. 우리 조상들은 클래스가 비교불가한 중국 대륙에서 우리를 전멸시키기 위해 다가오는 100만 대군을 상대해야 했기에 그냥 승리해서는 안되고 일당백의 적의 대군을 물려 쳐야 하는 고난도의 전쟁스킬이 뼛속에 내장된 민족이다.


굵직굵직한 전쟁사의 대부분이 퇴각하는 적을 끝까지 추격하여 전멸시키는 살수대첩부터 안시성 전투 귀주대첩 노량해전까지 헤아릴 수도 없는 외적의 침공에 청야전술로 스스로 조국의 산하를 초토화시키고 산성으로 들어가 적을 유인한 다음 그 당시 스나이프의 저격용 총과 같은 활로 적을 하나하나 격퇴하고 물러가는 적을 끝까지 추격하여 전멸시키는 우리 조상님들의 전쟁방식은 세계 최강 몽골 군대도 혀를 내두르는 고난도 스킬인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가난과 싸우고 나라를 지키며 여기까지 왔다. 화씨지벽의 완벽한 옥구슬은 아니어서 좌절도 하고 실패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핏속에는 가난과 생존을 위해 분투노력했던 조상님들의 피가 DNA를 타고 흐르고 있다.


오천 년 가난을 청산하고 지정학적 저주를 지정학적 축복으로 전화위복 시킨 수많은 영웅들의 노고에 힘입어 우리는 풍요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그리고 풍요를 만드느라 소홀히 한 수많은 사회적 모순과도 우리는 마주하며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시대를 사는 풍요의 역설에 빠져 있다.


그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풍요에서 빠져나오는 절대 반지는 우리의 마음이 가난해져야 한다. 작은 것에도 감지덕지하며 우리가 여기까지 달려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으며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가를 생각하면 다시 한번 공짜점심은 없다는 단순한 진리와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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