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나의 미시사微視史와 나라의 거시사巨視史로 엮여 있다.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나라는 개인이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개인의 미시사微視史요, 그러한 개인이 모여 조직에 들어가고 그 조직이 사회를 만들고 사회가 모여 국가가 형성되고 국가는 이합집산 원교근공하면서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나라의 거시사巨視史를 써 내려간다.
국가의 거시사巨視史와 개인의 미시사微視史는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수많은 문명이 명멸해 가는 동안 종교와 철학, 과학과 사상은 그때마다 옷을 바꾸어 입고 이것이 최선崔善이며 저것이 차선次善이라고 속삭이기도 하고, 때로는 이것은 최악崔惡이며 저것은 차악次惡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눈을 뜨는 자는 볼 것이요 귀가 열린 자는 들을 것이며 의식이 있으면 느낄 것이다.
이처럼 역사는 본능과 이성이 충돌하며 생각과 의식이 갈등하고 실리와 명분이 모호하게 흘러가는 실험실이다.
미시계微視界를 밝혀내는 자연과학이 실험실에서 비커와 시약을 가지고 실험을 통하여 자연의 섭리를 증명하려고 했다면 거시계巨視界를 설명하려는 인문학자는 문사철 文史哲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국가가 명멸하는 거시사巨視史와 개인이 그리는 미시사微視史라고 하는 시약을 들고 세상의 원리를 파헤치려 드는 것이다.
밤과 낮이 실존하고 거시계巨視界와 미시계微視界가 어울려 있으며 섭리와 원리가 혼재되어 있는 세상 속의 인간의 삶은 늘 위태롭고 가변적이다.
절대진리가 존재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우리는 늘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자연을 해석하려 하고 세상을 설명하려 든다.
결국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게 있을 뿐이고 세상은 인간의 의지대로 움직일 뿐이다.
세상 속의 티끌 같기도 하고 태산이 될 수도 있는 인간의 의지가 본능을 따르느냐 이성을 향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자연이라는 우연과 세상이라는 필연 속에서 나비가 그리는 날갯짓 같은 무늬와 패턴을 창조한 우리들 앞에 우연히 창조된 자연의 아름다움에는 눈을 감고 필연적으로 설명되는 세상의 성과에만 집착하다 보면 본능과 이성으로 이루어진 개인의 미시사微視史는 사라지고 차가운 이성만이 날뛰고 이성으로 이루어진 계산하는 세상의 결정판 AI시대 속으로 우리는 깊숙이 들어가서 개인의 미시사微視史는 어디 가고 없고 국가의 거시사巨視史가 역사 전체를 지배하는 세상을 마주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세상에 온 우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국가와 같은 조직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잘 살기 위해 세상이 만들어낸 도구일 뿐이다.
도구가 주객을 대체하고 이성이 본능을 말살하며 국가가 우리를 지워버리는 일이 백주대낮에 소리 소문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낮이 밤을 지우고 세상이 자연을 백안시하고 거시巨視가 미시微視를 가리는 헷갈리고 본말이 전도되는 악세는 지속가능할 수도 없고 계속되기도 어려운 실상이 아닌 가상의 세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