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복은 고사하고 화만 피해도 그 한 생은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삶이다.
사랑을 구하고 복을 구한다는 의미의 애걸복걸이라는 것을 하면서 사랑에 집착하고 복에 매달려도 인생을 살면서 사랑과 행복이라는 대상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눈앞에 있어도 선뜻 잡지 못하며, 잡았다 해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이 사랑과 행복이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며 행복은 불행의 씨앗이라는 애증이 교차하고 행불행이 겹치는 인생이라는 희비쌍곡선에 올라타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재앙은 복안에 기대어 있고, 복은 화 안에 엎드려 있다(禍兮福之所倚·화혜복 지소기, 福兮禍之所伏·복혜화지소복).” 는 노자의 일갈에서 한 생을 사는 나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나라의 흥망성쇠까지도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의 원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1980년 서슬 퍼런 신군부의 계엄치하에서 5월의 비극적인 봄이 지나가고 무심하게 신록이 푸르질 무렵, 나는 그해 7월의 여름에 무전여행 중 부여에 들러 부소산성과 낙화암 그리고 바다같이 더 넓은 백마강을 둘러보면서 660년 백제멸망의 그날을 말없이 증언하며 바다로 흘러가고 있는 백마강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임진왜란과 함께 역사에 꼽을 만한 동아시아 대전이요, 삼국지 열국지는 따라올 수 없는 대단한 스케일의 전쟁이 백제와 왜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그 당시 세계최대 제국 당나라가 참전한 삼국통일 전쟁이다.
해양대국 백제는 한강유역을 차지한 위례 백제 시기의 전성기를 뒤로하고 부소산성과 백마강에 은거한 부여 백제에서 망국의 그날을 기어이 마주하고야 말았다.
쌓이고 쌓인 적폐와 국제정세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 백제를 기다리고 있었던 망국의 현실은 부소산성을 지키지 못하고 바다같이 넓은 백강 하류를 바라보면서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삼천궁녀의 슬픈 전설과 백강 전투에서 궤멸된 왜군의 붉은 피와 당나라로 끌려가 낙양성 북망산에 묻히기 전 고향 백제를 그리워하다 죽은 의자왕을 비롯한 백제유민의 피맺힌 절규가 모인 구슬픈 노래 가락만 들리는구나.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신이 그누구뇨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거 저 모양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
이처럼 수학의 적분과도 같은 멸망의 순간을 되돌려 미분해보면 한없는 후회와 회한으로 점철된다.
시간을 거슬러 백제도 잘 나가던 시기에 국제관계라는 동아시아의 판세를 읽고 해양대국 백제의 특장점을 살려 서양의 지중해와 다름없는 황해 유역의 제해권을 확실히 거머쥐고 중국대륙 연안까지 진출하여 동남아 해로를 개척하였다면 한반도 귀퉁이 경상도에서 대야성까지 잃고 궁지에 몰린 신라의 김춘추를 자극하지 않았을 것이고 김춘추가 당나라로 가서 나당연합군을 몰아 백제를 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나 나라나 잘 살면 행복에 겨워 더더더를 연발한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모르고 감사보다는 불만을 입에 달고 산다. 그 지점이 바로 재앙이 복안에 기대고 서 있는 모습이다.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현실은 아무리 봐도 복이 화 안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재앙이 복 안에 기대고 있는 형국이다.
차곡차곡 화가 쌓이는 적분 끝에 재앙에 직면하면 그때 아무리 원인을 미분하여 분석을 해봐도 기회의 신이 앞머리만 있고 뒷머리는 없어서 지나가고 나면 잡을 수 없듯이 역사의 가정이라는 부질없는 허무를 낙양성 십리허에 묻혀 북망산에서 불귀의 객이 된 영웅호걸과 절세가신이 우리들에게 말없이 웅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