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자웅동체라는 생물학적 단어나 부부일심동체라고 하는 사회학적 용어의 의미가 무게를 가지고 새롭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지구 자체가 하늘이라는 아버지와 땅이라고 하는 어머니의 결합으로 만물이 생성되고 그 와중에 우리 인간도 하늘을 닮은 수컷과 땅을 닮은 암컷이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아들 딸을 낳으면서 일시무시하고 일종무종한 끝을 알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곳은 늘 암수가 있고 부부로서 인연을 맺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간절히 원하기도 하고 소 닭 보듯이 경원敬遠하기도 하며 마치 전생의 원수가 만나듯 싸우기도 하다가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면 애틋함이 하늘을 찌르는 법이다.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1586년 5월 하순 고성 이 씨 이응태(1556~1586)는 31세의 젊은 나이로 부인 배 속에 아이를 둔 채 숨을 거둔다. 부인은 남편의 병이 낫게 해 달라고 자기 머리카락을 섞어서 짚신을 삼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부부간 별리의 아픔을 써 내려간 청상의 여인의 글이 400여 년이 훌쩍 넘은 1997년 11월 중순 안동시 정하동 신축 아파트 택지 개발 조성 공사 중에 우연히 무덤에서 발굴되었을 때 몇 백 년의 시공을 너머 절절한 부부의 사랑을 한글이라고 하는 문자로 표현한 조선시대 최고의 한글편지라고 이야기하는 글벗의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처럼 말은 글에 담기고 글은 시공을 초월하여 마음을 전달한다.
즉 달리는 말에 올라타 살아생전 발화된 말을 주워 담고 수습하기 바쁘다가 글이라는 불완전한 도구를 손에 넣고 그래도 수습된 몇 마디 말을 뼈대 삼아 주섬주섬 그리다 만 것이 어쩌면 글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시공을 넘어서 전달되는 한 가지는 마음 밖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이다.
기억은 감정이며 감정은 마치 전기에 감전되듯이 마음에 스파크와 같은 불꽃을 일으키면서 사랑으로 발전되는 것이다.
마음의 장기 심장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여야지 비로소 46조 개의 세포가 살아 숨 쉬듯이 심장의 사랑이 사라지면 우리는 그야말로 죽는 것이다.
머리로 계산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듯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조선시대 여인의 망부가에서 남편에 대한 안해의 사랑이 마음으로 전달되고 그 마음이 한글이라는 글에 담겨있을 때 그 글은 더 이상 그린 글이 아니라 청춘에 저 세상으로 가버린 남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는 조선시대 최고의 한글편지로 재탄생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